엔화가 초강세를 지속하고 있다.

`엔고'는 일본과 경쟁하는 국내 수출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최근 엔고는 세계 경기둔화 우려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어서 우리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만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엔고로 인해 과거 저금리, 저환율 때 엔화로 대출받은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의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우리 경제에는 `양날의 칼'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 값은 달러당 85엔대에서 거래 중이다.

장중 한때 85엔대가 붕괴하며 84.90원까지 내려서기도 했다.

엔화 값은 전날 런던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84.70엔을 기록해 1995년 7월 이후 15년 만에 최고치를 나타내기도 했다.

엔화가 강세를 보인 반면 원화는 약세로 돌아서면서 재정환율인 원.엔 환율은 장중 100엔당 1,410.44원까지 뛰었다.

일본의 경기 부진과 저금리에도 엔화값이 치솟고 있는 것은 미국과 중국의 경제 둔화 우려로 세계적으로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강화되면서 안전통화인 엔화로 투자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다.

중국이 올해 상반기(1~6월)에 일본 국채를 1조7천억엔어치나 순매수한 점도 엔화값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중국은 유럽의 재정위기와 미국 경기 둔화로 외환보유액 운용이 여의치않자 상대적으로 안전한 일본 국채를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이 과정에서 엔화 수요가 발생해 엔화 값이 올랐다는 것이다.

엔화값이 급등하면 일본 제품의 가격경쟁력은 약화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가전, 조선, 반도체, 자동차 등 세계 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하는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반면 부작용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수석 연구위원은 "한국은 대부분 자본재와 부품소재를 일본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엔화 강세로 수입 비용은 오히려 늘어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엔화강세가 세계 경기둔화와 맞물려 있어 우리 수출기업에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세계 경기가 둔화하면 수요도 줄어들어 한국의 수출도 영향을 받게 된다.

한국 경제 펀더멘털과 달러 수급 등을 고려할 때 원화값은 다시 강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원화강세-엔화강세' 구도가 형성되면 과거와 같은 수혜는 기대하기가 어렵다.

◇엔화대출자 부담 급증
엔화값 상승으로 엔화대출자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저환율과 저금리 때 받은 엔화대출의 이자와 원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다.

한 엔화대출자는 한국은행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려 "100엔당 840원을 적용받은 엔화대출자가 1,400원 안팎의 엔고에 시달리고 있다"며 울분을 토했다.

원·엔 환율은 2005년 말부터 2008년까지 100엔당 700~900원대의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때 1,500원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올 초에는 1,200원대를 유지하다가 지난 4월 26일에는 1,168.75원으로 연중 최저점을 기록했으나 유럽 재정위기 여파와 천안함 사태가 터지면서 지난 5월 25일에는 1,419.99원까지 급등한 뒤 1,300~1,400원대를 지속하고 있다.

2008년 8월에 공장 시설자금으로 엔화대출 1억엔(환율 100엔당 951원)을 받은 인천 남동공단의 한 기업은 연간 대출이자 부담액이 4천500만원이었으나 현재(100엔당 1,410.20원)는 5천900만원으로 1천400만원(31%)이나 늘었다.

이자뿐만 아니라 대출원금도 원화 환산 기준 4억5천900만원(48%)이나 급증했다.

이에 따라 은행들도 엔화대출을 받은 기업들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이날 엔화대출 기업에 공문을 보내 "한동안 하락하던 엔화환율이 최근 다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외화대출을 상환해 환리스크를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도 은행들이 외화대출을 해줄 때 사전에 고객에게 환율변동위험을 충분히 고지하고 대출 후에도 정기적으로 위험 관련 정보를 제공토록 하는 내용의 모범 규준을 마련하고 이달 말부터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