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相生)이 요즘 산업계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상생이란 말 그대로 함께 공존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산업계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게 정부 인식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 관료들이 연일 이 문제의 개선을 촉구하는 까닭이다. 상생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대기업들이 잇따라 상생 경영 대책을 내놓고 있다. 이런 가운데 상생 경영을 꾸준히 추진해 온 공기업들이 주목 받고 있다. 공기업들은 사업 구조 자체가 공익을 위한 것이어서 상생 경영이 이미 몸에 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공기업들의 상생 경영이 민간기업들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볼 수 있는 이유다.

R&D 협력서 자금지원 · 수출판로 개척까지

대표적 공기업인 한국전력은 중소 협력업체와의 동반 성장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실시하고 있다. 1990년 초부터 공기업으로는 처음 중소기업 지원사업 계획을 추진했다. 이 덕분에 '협력연구개발→생산자금 지원→제품 구매→수출지원'으로 이어지는 단계별 맞춤형 상생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한전은 협력기업의 90% 이상이 중소기업이며 총 제품 구매액의 76%가량을 중소기업에 맡기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을 위해 중소기업 지원펀드와 판로개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원자력기술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우수 협력업체에 한수원 전문기술 인력을 전담 멘토로 지정,기술 애로사항에 대한 컨설팅도 제공하고 있다. 또 자금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에 낮은 금리로 신용대출을 해주고 있다. 이를 위해 작년 4월 중소기업은행과 '한수원 뉴파워 대출' 협약을 맺었다.
중기제품 구매 확대…지속성장 유도

한국가스공사는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 확대를 위해 매년 중소기업 제품구매 확대 방안을 만든다. 지원 방안에 대한 담당자 교육을 강화하고 분기별로 추진 실적을 점검,해마다 제품 구매액을 크게 늘리고 있다. 작년 중소기업 제품 구매실적은 총 5655억원으로 당초 목표였던 2214억원을 배 이상 달성했다. 총 구매액에서 중소기업 제품 구매액이 차지하는 비율은 24.3%를 기록했다.

한국석유공사는 주요 사업인 석유개발사업의 특성상 국내에서 지속적인 거래 관계를 형성하는 데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위해 석유비축기지 등 5개 분야 10개 용역을 대상으로 성과공유제 사업을 도입 · 운영하고 있다. 성과공유제는 경쟁입찰을 통해 선정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수행실적평가를 실시,우수 업체에 대해선 계약 기간을 추가로 2년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지역난방공사는 일부 품목과 용역 계약에 대해서는 대기업 참여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중소기업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중소기업에만 경쟁입찰 자격을 준 품목이 13개에 달한다. 올해는 신규 품목으로 이 같은 제도를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중소기업이 수주를 늘리고 적정 이윤도 확보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속에서 빛 발한 相生경영

에너지관리공단은 빈곤층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다. 효율이 떨어지는 사회복지시설의 오래된 조명기기를 고효율 조명기기로 무상 교체해 주는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조명기기 효율을 향상시켜 에너지를 절약하는 동시에 사고 위험도 줄이고 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공공임대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마을형 사회적 기업 설립도 지원하고 있다. 임대단지 입주민과 인근 지역주민에게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를 만들고 있다.

국민연금공단은 국민연금 기금을 활용해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2002년부터 벤처투자를 시작, 작년 말 기준으로 400여개 기업에 2676억원을 투자했다. 연금공단 본부와 지사에서 사용하는 제품을 살 때도 중소기업 것을 우선 구매한다. 작년에는 중소기업 지원 관련 예산집행 지침을 만들어 634억원가량의 제품을 중소기업으로부터 사들였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포드가 미국 대형 자동차업체 중 유일하게 구제 금융을 받지 않은 것은 협력 업체와의 상생 덕분이라는 분석이 많다"며 "상생 경영을 실천하는 공기업은 매년 실시하는 기관 평가에서 가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