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이후 약 30년간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를 독점하며 정보기술(IT) 업계 제왕으로 군림해 온 인텔의 아성이 점점 흔들리고 있다.

독주체제 유지를 위해 컴퓨터 제조회사들을 상대로 휘둘러 왔던 강매,끼워팔기 등 전횡은 반독점 단속의 칼날 아래 점차 힘을 잃을 기미를 보이고 있다. 또스마트폰과 태블릿PC, 클라우드 컴퓨팅과 모바일 운영체제(OS)로 대표되는 IT 시대의 대격변 속에서 데스크톱PC와 노트북용 CPU 위주의 수익구조에서 벗어나야생존할 수 있다는 변화의 필요성도 절실해졌다.


◆인텔 "독점지위 남용 않겠다"

인텔이 4일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에 "CPU 공급과 관련해 컴퓨터 제조업체들을 압박하지 않겠다"며 손을 든 게 이 같은 구도 변화를 대표적으로 상징한다. FTC는 지난해 12월 인텔을 불공정거래에 따른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미 행정법원에 제소했다. 인텔이 IBM과 휴렛팩커드(HP),델 등 주요 컴퓨터 회사에 자사의 경쟁사들인 AMD,비아테크놀로지 등의 CPU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았다는 것이다.

FTC의 제소 이후 줄곧 혐의를 부인해 왔던 인텔은 이날 자사의 반도체칩을 독점 공급할 목적으로 컴퓨터 제조사에 불공정한 이득을 제공하거나 위협을 가하지 않겠다고 FTC와 합의했다. 또 CPU 외에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다른 제품을 끼워파는 행위도 앞으로 자제하겠다고 약속했다. 과거의 인텔이었다면 보기 어려웠을 '낮은 자세'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인텔과 FTC의 합의는 향후 세계 2위 CPU 기업인 AMD와 인텔의 GPU 경쟁사 엔비디아 등에 큰 반사이익을 가져다줄 것"으로 전망했다.

물론 인텔은 아직도 IT 업계 공룡이다. 인텔의 지난 2분기 순이익은 29억달러로 10년 만에 최고의 분기실적을 기록했다. 세계 CPU 시장 점유율도 여전히 약 80%를 차지한다. 하지만 최근 신시장으로 떠오른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부문에선 존재감이 미미하다. 현재 이 분야 CPU 시장에선 영국 반도체 설계기업 ARM의 점유율이 약 95%에 달한다. 또 인텔이 넷북용 CPU로 2008년 처음 선보인 '아톰'도 넷북 시장의 부진 여파로 그리 성공적인 판매 실적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MS+인텔 동맹 해체 가속화

이같이 변화의 기로에 선 인텔과 관련해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모바일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처지를 인텔과 연결시켜 "이제 세계 IT 시장에서 '윈텔(마이크로소프트의 PC 운영체제 윈도와 인텔의 합성어)'의 전성기는 끝났다"고 보도했다. PC용 OS시장 점유율 90%를 자랑하는 MS도 모바일 시장에선 애플과 구글에 크게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 시장조사업체 닐슨에 따르면 2분기 미국 스마트폰 신규 판매 시장에서 윈도모바일 OS가 탑재된 스마트폰의 점유율은 11%에 그치면서 블랙베리(33%)와 구글 안드로이드폰(27%),애플 아이폰(23%)에 비해 크게 뒤처졌다.

이코노미스트는 "인텔이 노키아와 함께 모바일용 OS '미고(Meego)'를 내놓고,MS는 지난달 말 인텔의 경쟁사 ARM과 손잡는 등 인텔과 MS가 생존을 위해 예전의 동맹 관계를 깨려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며 "이는 글로벌 IT 업계가 본격적으로 다극화 체제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