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 · 달러 환율이 올 들어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엔화 가치가 연일 오르자 일본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본 언론과 기업들은 5일 "급격한 엔화 가치 상승은 경제에 큰 위협이 된다"며 "정부가 환율 안정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달러 대비 통화강세 현상이 일본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닌 데다 다른 선진국들은 환율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일본 정부가 나서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엔고에 대처해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정부는 노동규제를 풀고 법인세를 내리는 등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며 "미국 등의 이해를 구해 직접 외환시장에서 자금을 푸는 방법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엔 · 달러 환율은 5월4일 94.62엔에서 지난 4일 85.33엔으로 9.8% 떨어졌다. 이날 86엔대로 올라섰지만 장기적으로 더욱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일본 기업들은 연초 달러당 90엔대를 상정해 사업계획을 짰지만 예상치 못한 엔화 강세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가도시 유키 닛산자동차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이날 신차발표회에서 "엔고가 수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며 "정부가 각국의 협조를 얻어 영향을 최소화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블룸버그통신은 "일본의 경제를 위협하고 있는 엔고 현상에 맞서 일본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고 씨티은행의 분석을 인용해 보도했다. 다카시마 오사무 씨티은행 애널리스트는 "시장의 많은 투자자들은 달러당 85엔대가 붕괴되면 일본 정부가 개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그러나 정부가 주요 20개국(G20) 합의 사항인 통화긴축 기조를 어기고 직접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중국의 위안화 절상을 지지해온 일본이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외교적 관점에서도 명분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모리타 고타오 바클레이즈캐피털 채권전략가는 "오바마 정부는 2015년까지 수출을 2배로 늘리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미국의 승인 없이 일본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수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일본 정부는 최근 환율 변동에 대해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고 있다. 노다 요시히코 일본 재무상은 "엔화의 환율 움직임이 너무 일방적"이라고 불만을 표시하면서도 시장개입 여부에 대해서는 노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

WSJ는 "일부에서는 엔 · 달러 환율이 2차대전 이후 최저치인 79.75엔(1995년 4월)을 깨트릴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노무라증권 싱가포르 지점의 시몬 플란트 외환전략가는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에서 엔화 비중을 늘릴 수밖에 없어 엔화 가치는 더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태완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