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가 성장동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유로화 · 엔화 등 주요국 통화 대비 미 달러화 가치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유럽발 재정위기가 진정되면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퇴조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경기불확실성이 커져 초저금리가 장기간 지속될 것이란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만큼 미 달러화 약세 분위기는 한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3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유로 · 달러 환율은 1.3231달러로 전날의 1.3170달러에 비해 0.40%가량 상승했다. 유로화 대비 미 달러화 가치가 그만큼 떨어진 것이다. 유로화가 달러당 1.32달러를 웃돈 것은 5월4일 이후 처음이다. 6월 초 4년 만에 최저 수준인 1.19달러로 떨어졌던 유로화 가치가 10.9% 오른 셈이다.

◆엔 강세 속 日 국채금리 1% 아래로

일본 엔화 대비 가치도 계속 하락하고 있다. 5월4일 달러당 94엔대까지 내려갔던 엔화 가치는 4일 장중 달러당 85.3엔대 초반까지 상승,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엔화 대비 달러화 가치는 3개월 새 11%가량 급락했다. 엔화 가치가 오르면서 이날 일본의 장기금리(10년물 국채 기준)는 연 0.995%로 떨어졌다. 일본의 10년물 국채 금리가 1% 아래로 내려간 것은 7년만에 처음이다. 런던 외환시장에서 파운드화 가치도 0.3% 오른 1.5938달러로,6개월 만에 최고치였다.

미 달러화 약세 배경으로는 우선 유럽 국가 재정위기가 진정되면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급속히 퇴조하는 현상을 꼽을 수 있다. 5,6월 최고조에 달했던 유럽발 국가 재정위기가 유로존 국가들의 안전장치 마련으로 진정된 데다 최근 유럽 은행들에 대한 스트레스테스트 결과 발표로 시장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유로화 가치가 회복되는 추세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유로화는 단기적으로 남유럽 국가 재정위기가 불거지기 전 수준인 1.40~1.45달러 수준까지 회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도 경기가 둔화되고 있지만 경착륙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받으면서 시장의 불안감이 잦아들고 있다.

각종 경제 통계에 비춰볼 때 성장동력을 잃어가는 미국 경제에 대한 우려도 달러화 가치 하락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두 달 연속 소비자 신뢰지수가 떨어지는 등 미국 경제 성장의 70%를 차지하는 소비 회복이 부진하다.

이날 상무부 발표에 따르면 6월 개인 소비와 소득은 모두 전달과 같은 수준을 나타냈다. 정부의 주택 지원책이 끝나면서 기존주택 판매도 최근 두 달 연속 하락했다. 게다가 위축된 민간 수요를 보전할 수 있는 연방정부의 경기 부양책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달러 가치 추가하락 전망 만만찮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추가로 통화정책을 완화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는 점도 달러 약세 요인으로 작용했다. 3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FRB가 만기가 돌아오는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채권 자금으로 모기지 채권 혹은 국채를 매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FRB가 이들 채권을 매입하면 시장 금리를 내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반면 달러에 대한 투자 매력을 떨어트리게 된다.

톰 피트패트릭 씨티그룹 수석 애널리스트는 "6개국 주요 통화에 대한 미 달러화 가치가 200일 평균선을 밑도는 등 달러 약세 시대가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특히 6일 노동부가 발표하는 7월 실업률 통계에서 비농업 부문 고용이 악화된 것으로 나오면 달러화 가치는 가파르게 하락할 수 있다.

엔화는 미 달러화는 물론 유로화에 대해서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처럼 디플레이션 우려와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지만 무역수지와 경상수지에서 흑자를 내고 있고,정부가 예상하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2.4%로 유럽 전망치보다 높기 때문이다. 달러캐리 트레이드(달러 자금으로 해외 고수익 상품에 투자) 자금이 일본 국채 등으로 몰리는 이유다.

일본 정부는 당초 심리적 저항선이었던 달러당 86엔대가 깨지면서 환율 안정을 위해 시장 개입에 나설지 고민 중이다. 노다 요시히코 일본 재무상은 이날 내각회의에서 "환율의 과도한 변동은 경제와 기업 안정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시장 움직임을 주의깊게 보고 있다"며 시장 개입 가능성을 내비쳤다.

뉴욕=이익원 특파원/이미아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