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기술유출 분쟁까지 예방
다른 대기업들로 확산될 듯
1차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한 상생협력 활동만으로는 "대기업이 하도급 관계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협력업체에 돌아가야 할 몫을 독식하고 있다"는 정부의 질책과 비판적 여론을 해소하기 힘들다고 봤기 때문이다. 삼성은 이를 통해 단기적으로 협력사에 대한 현금 결제를 확대하는 효과와 함께 중장기적이고 실질적으로 협력사들이 성장해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다는 방침이다.
1차 협력업체들이 하도급관계를 악용해 2차 업체의 기술이나 인력을 빼오는 것과 같은 납품단가 이외의 부작용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800개 1차 협력업체는 '진골'
그동안 삼성 상생경영의 초점은 1차 협력업체들에 모아져 있었다. 현금으로 납품대금을 결제하고 R&D(연구개발) 프로젝트도 공동으로 진행했다. 그 결과 1차 협력업체의 살림살이는 수년 전에 비해 대폭 개선됐다.
삼성전자와 거래하고 있는 800개 1차 협력업체의 2009년 평균 영업이익률은 6.1%로 삼성전자(8.3%)와의 격차가 2.2%포인트에 불과했다.
문제는 2차,3차 등으로 하도급 관계가 내려가면서 발생한다. 결제수단은 대부분 1~6개월짜리 어음이다. 구두로 부품을 주문했다가 거래를 취소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삼성의 한 2차 협력업체 관계자는 "2차 협력업체는 1차 협력업체 사람들을 '진골'이라고 부른다"며 "비슷한 규모라도 1차가 되느냐 여부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2,3차 협력업체에 혜택 돌아간다
업계에서는 재계 서열 1위인 삼성이 2,3차 협력업체들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상생경영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만큼 다른 대기업들도 잇따라 비슷한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업 대부분이 현금 결제 원칙을 지키고 있는 만큼 2,3차 협력업체도 '현금 트리클다운(trickle down)'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 전망이다. 트리클다운은 '넘쳐 흐르는 물이 바닥을 적신다'는 뜻의 경제 용어로 대기업이 성장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면 중소기업도 함께 이익을 낼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현대 · 기아자동차 그룹도 올해 하반기 상생경영의 핵심을 2,3차 협력업체로 판단,관련 부서 임원들이 직접 현장을 다니며 상생경영을 독려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정몽구 회장이 최근 2차,3차 협력업체에 대한 특별관리를 당부하면서 구매관련 부서에도 비상이 걸렸다"고 말했다.
◆하도급법이 협력업체 지원의 걸림돌
삼성은 2,3차 협력업체들에 대한 지원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현실적 제약이 많다는 점도 하소연하고 있다.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의 경영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하도급 관련법이 그것.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1차 협력업체에 납품대금 결제수단을 어음 대신 현금으로 바꾸라고 지시할 경우 '부당한 경영간섭'으로 간주돼 법적 제재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현대 · 기아자동차 그룹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1차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2,3차 협력업체들에 대한 현금 결제를 늘리라고 권유하기도 어렵지만,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제재할 방법은 더 더욱 없다는 설명이다. 당초 영세 협력업체들의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령이 대기업들의 새로운 상생경영 방안 도출을 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조일훈/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