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이어 국회의원 재 · 보궐선거까지 끝났다. 정부 입장에서는 2012년까지 큰 선거가 없어 소신있게 정책을 펼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 지난 주말 전기 · 가스 · 고속버스 등 공공요금을 줄줄이 인상하는 방안을 발표한 데에는 이 같은 상황 변화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정부 관계자들의 얘기다.

이에 따라 그동안 민심을 의식해 보류했던 쌀 조기 관세화,투자개방형 의료법인 허용,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등 주요 정책과제들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선거 이후로 미뤄둔 정책들이 대부분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요인을 안고 있어 상당한 진통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쌀 조기 관세화 시한 임박

창고에 쌀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쌓여가는데도 의무적으로 쌀 수입을 매년 늘려야 하는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개정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한국은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는 대신 1994년부터 매년 쌀 수입량을 늘리고 있다. 의무 수입량이 계속 늘어나면서 쌀값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쌀 의무수입을 없애는 대신 적절한 관세를 매기는 방식으로 쌀 시장을 개방하는 '쌀 관세화'는 다음 달 말까지 WTO에 '협상 의사'를 통보해야 한다. 쌀 관세화로 전환하지 않으면 내년에는 34만t의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한다.

농림수산식품부는 그동안 농민 반발 등을 우려해 조기 관세화에 소극적이었다. 농민단체 설명회를 여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WTO에 협상 여부를 통보하는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아 정부는 이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농식품부 고위 관계자는 "어차피 모든 농민단체들의 동의를 기대할 수는 없는 만큼 어느 정도 공감대만 형성되면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부처 간 이견으로 작년 이후 표류하고 있는 투자개방형(영리) 의료법인 도입 문제도 '선거 후'로 미뤄진 과제다. 기획재정부는 제조업 수출 호조만으로는 고용 창출이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다는 판단에 따라 서비스업 선진화를 하반기 핵심 추진 과제로 잡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제조업 1% 성장은 0.1%의 고용 감소를 가져오지만 서비스업의 경우 1% 성장에 0.66%의 고용 증가 효과가 있다는 분석 자료를 내기도 했다.

하성 재정부 미래전략정책관은 "8%대인 청년실업률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이른 시일 내에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도입의 물꼬라도 터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는 완강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변수는 전재희 장관이 개각 대상에 포함될 것인지 여부다. 새 장관이 오게 되면 복지부 입장에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한 · 미 FTA 발효

미국 의회의 중간선거가 예정된 11월까지 한 · 미 FTA를 비준하겠다는 것이 한 · 미 양국 정부의 입장이다. 중국이 최근 대만과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하는 등 지역 내부의 무역자유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한 · 미 FTA 발효는 미국과의 무역을 증대시킬 수 있는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이 잇따라 제기하고 있는 자동차 · 쇠고기와 관련된 불만을 해소하는 방안을 찾는 일이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협정문의 수정은 절대 없다는 원칙적 입장만 밝혀왔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미국 측과 적극적인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태호 외교통상부 FTA 정책국장은 "지금 분위기를 보면 미국이 조만간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며 "협정이 빨리 발효될 수 있도록 대화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