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제품 제조업체인 K사 전 대표 A씨(43)는 2008년 회사 명의로 실제 80억원 정도였던 비상장기업 주식을 공인회계사에게 125억원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과대평가해 달라고 의뢰했다. 이후 회사로 하여금 주식을 125억원에 사들이게 한 뒤 '원가'와의 차액인 45억원을 빼돌렸다. 그는 이 돈으로 K사 주식을 매수, 단숨에 대주주로 올라섰다. 자신의 돈은 한 푼도 들이지 않은 현대판 '봉이 김선달'식 행각이었다.

A씨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주식을 사채업자에게 담보로 잡혀 빌린 돈으로 작전세력과 함께 모두 912회에 걸쳐 회사 주가를 조작, 34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A씨는 결국 검찰에 구속됐고 K사는 지난 4월 상장폐지됐다. 이 바람에 '개미투자자'들의 주식은 한순간에 휴지조각이 됐다.

1일 검찰에 따르면 이런 소액투자자들만 15만4000명에 이른다. 시가총액만 437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아직 상장이 유지되고 있는 업체까지 합치면 21만여명의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볼 것으로 추정됐다.

이번에 적발된 기업 사냥꾼들은 사채 등을 끌어들여 상장기업을 장악한 뒤 횡령 등의 수법으로 회사 자금을 빼돌려 결국 상장폐지 또는 폐지직전 상황 등 회사를 위기로 몰고 가는 수순을 밟았다.

소프트개발업체 H사는 실제 사주가 여러 상장기업에 관여해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처벌 받은 전력이 있었으며 이 가운데 2개 업체는 결국 상장폐지됐다. 그는 2009년 투자가치가 없는 몽골 소재 법인을 100만원에 산 다음 법인 지분 51%를 취득했다고 주장하며 회사 자금 290억원을 가져갔다. 또 같은 해 2년 동안 매출이 전혀 없었던 자회사에 단기대여금 형식으로 200억원을 보냈다가 다시 빼내 개인 빚을 갚은 혐의도 받고 있다.

이처럼 사적인 목적으로 회사 자금을 빼돌린 경우가 상당수였다. 공연기획업체 D사 대표는 증자대금을 받은 후 투자금 · 선급금 명목으로 거래처에 돈을 지급했다가 되돌려받는 수법으로 82억원을 횡령한 것으로 밝혀졌다.

집중력 향상기기 제조업체인 G사의 최대주주는 회사 자금 약 369억원을 빼돌린 데 이어 회사보유 주식 230억원을 개인의 빚담보로 제공하고 76억원의 개인채무를 회사가 대신 변제하게 하는 등 빚을 갚는 데 '주력'했다. 호재성 허위 공시,공인회계사 매수를 통한 회계감사 결과 조작 등도 주요 수법으로 지목됐다.

검찰의 수사대상에 자주 등장했던 증자대금 차입수법인 '찍기'가 이른바 '꺾기'로 변화한 점도 눈에 띄었다. 종전의 '찍기'는 유상증자를 하면서 사채업자로부터 돈을 빌려 주금을 낸 뒤 바로 되갚는 수법이다.

반면 '꺾기'는 사채업자에게서 빌린 대금 중 일부는 바로 갚고 나머지는 주식으로 교부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대신 사채업자는 △주가가 일정 금액 이하로 떨어지면 바로 주식을 매매하는 반대매매약정 체결 △어음 · 양도성예금증서 담보 요구 △손실보전에 관한 이면약정을 통해 원금 보장 및 고율의 이자 회수 등을 요구했다.

검찰은 이에 따라 '꺾기'에 참여한 사채업자들을 횡령 및 허위표시에 의한 시세조종혐의 공범으로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