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정책 단순 재탕이나 땜질식 처방 그쳐서는 안돼
미래비전 제시하고 경제구조 개혁 위한 전략 마련해야
사회안전망 구축..낙오자도 패자부활전으로 재기토록


최근 뚜렷해지는 경제성장의 혜택이 대기업뿐 아니라 일반 서민과 중소기업까지 고루 돌아가도록 하기 위한 묘책은 무엇일까.

1970년대식 낡은 정책이나 기존 정책의 단순 재탕, 복지를 강화하는 방식의 '땜질식 처방'에 의존하는 것이라면 서민경제를 살리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번 서민경제 살리기 어젠더를 막후에서 추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정운찬 총리는 '강중국가(强中國家)' 건설을 국가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규모는 크지 않더라도 강한 국력을 갖춘 나라를 뜻하는 강중국가는 양극화 현상이 없고 성실하면 인간답게 살 수 있으며 낙오자들도 사회안전망 덕에 패자부활전을 통해 재기가 가능한 사회를 일컫는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임기응변식 서민경제 살리기 대책에 그칠 것이 아니라 경제구조를 개혁하기 위한 창조적인 중장기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中企 직접 지원으로 산업정책 전환해야
우선 대기업에 편향된 정부의 산업지원 정책을 중소기업 직접 지원 쪽으로 돌려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부품.소재산업 육성, 기술개발 지원 등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하며 중소기업 스스로 해외 판로를 개척하도록 돕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시장경제의 구조를 중소기업이 자율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대기업-중소기업 간 수직적 네트워크를 공정하게 만들고, 중소기업들이 뭉쳐 공동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수 있는 수평적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소기업의 60% 이상이 하도급 관계에 있기 때문에 공정한 하도급 거래가 이뤄지도록 질서를 잡아야 한다"며 "다만 그 방법은 중소기업과 상생협력하는 대기업에 당근을 주는 방향이 아니라 불공정거래를 하는 대기업에 철퇴를 가하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중소기업이 단독으로 대기업과 협상할 때 열위에 놓일 수밖에 없다"며 "중소기업들이 공동이익을 위해 공동 구매와 판매, 연구개발(R&D)을 할 수 있도록 이를 담합 대상에서 제외하는 법률적 기반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 서비스업 육성으로 일자리 늘려야
서비스산업을 적극 육성하자는 것도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얘기다.

이미 정부가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영리병원) 도입이나 전문자격사 확대 등을 골자로 한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찬반이 엇갈리거나 이해 당사자의 저항 등으로 진척이 더딘 상황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똑같은 매출을 올리더라도 고용이 많은 업종이 대개 서비스업종"이라며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낮은 서비스업을 발전시키면 경제의 전체적인 생산성도 향상시키면서 고용 효과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제조업에서 1% 성장할 때 고용은 오히려 0.1% 줄어든 반면 서비스업에선 1% 성장할 때 고용이 0.66% 늘었다.

황수경 KDI 연구위원은 "도소매, 음식.숙박업은 고용 측면에선 과잉 상황으로 산업구조 선진화가 일차적 과제"라며 "업종 선진화와 일자리 질을 개선하면 새로운 시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법률, 디자인, 회계, 세무, 건축설계 등 생산자 서비스업, 의료, 교육, 복지, 문화, 관광 등 커뮤니티.사회 서비스업은 고용과 부가가치 산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아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는 "내수 활성화를 위해 일자리 창출에 우선 순위를 두고 서비스업에 대한 여러 규제를 약간의 부작용이 있더라도 완화하는 방안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조 교수는 "영리병원 도입이나 골프장 건설처럼 국민의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이 아니라 법률, 회계 등 사회 서비스업, 금융, 정보통신(IT) 등 산업의 중간재, 부품 역할을 하는 서비스업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제조업과 서비스업 간 긴밀한 연결고리가 형성돼 선순환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 사회안전망 통해 기업가 정신 발휘토록 하자
경제구조의 개혁과 함께 사회안전망 확충도 언급된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임시.일용직, 비정규직, 자영업자, 청년층 등 노동시장에서 지위가 낮은 사람들은 경제위기 때 어려움을 더 심하게 겪는다"며 "자영업자의 경우 전업 대책이 필요하고, 비정규직은 근로 유인형 복지체계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하준경 교수는 "교육훈련 등을 통한 복지는 노동력의 질을 높이면서 저소득층의 생활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며 "다만 복지는 유인구조를 근로를 장려하는 쪽으로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사회안전망이 갖춰져 있어야 위험을 떠안는 기업가 정신이 잘 발휘되고, 재기도 쉬워진다"며 "사회안전망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조세제도 고용 친화적으로 개편해야
조세 제도를 고용 친화적으로 개편하자는 지적도 있었다.

김상조 교수는 "투자세액공제 제도는 투자에 세금감면 혜택을 줘 기업들이 고용을 줄이는 자동화, 합리화에 투자하게 하고 결국 노동을 자본으로 대체해 고용을 줄이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한국은 자본이 부족한 나라가 아니라 고용이 부족한 나라가 됐다"며 "고용을 늘리면 더 많은 혜택을 받는 쪽으로 세제를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강석훈 교수는 고환율이 내수 활성화를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환율이 올라가면 대기업들 수익성이 좋아진다지만 실제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소비자물가 상승, 내수 위축 등으로 내수를 갉아먹는 효과가 더 크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환율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겠지만 고환율이 지속돼서는 내수가 근본적으로 활성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sisyph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