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난숙 서울 북아현동주민센터 생활지원팀장은 현장 실사를 나가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복지 예산이 효과적으로 집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새로운 복지 수요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현장에 나가 실태를 파악해야 하지만 이를 거의 포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무원 한두 명이 적게는 수백 세대,많게는 수천 세대의 사회복지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상황에서 현장을 일일이 찾아다니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하소연이다.

그렇다고 복지 담당 공무원들을 무작정 늘리기도 어렵다. 공공 부문의 비대화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복지 예산을 광범위하게 지원하기보다는 개인 특성에 맞춘 맞춤형 복지에 주력하고,사회봉사단체 등 민간 부문과도 적절하게 역할 분담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복지 행정 '깔때기 현상'

복지 예산이 매년 15~20%씩 증가하는데도 일부에서 더 많은 복지를 요구하는 배경에는 복지 전달 체계 문제가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각 정부 부처는 경쟁이라도 하듯 복지 정책을 쏟아낸다. 하지만 복지 행정의 최일선으로 내려가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정책이 원활히 집행되지 않는다. 때문에 수요자 입장에서는 복지 예산이 아무리 많이 늘어나도 본인에게 전달되는 체감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북아현동주민센터에서는 임 팀장을 포함한 공무원 3명이 약 2000세대의 사회복지 업무를 담당한다. 기초생활보장 대상이 185세대,기초노령연금 대상이 1200세대다. 한부모가정과 다문화가정 지원은 물론 중증장애인연금과 참전용사 명예수당 지급 업무도 주민센터의 몫이다. 센터를 방문하는 복지 관련 민원인만 하루 20명이 넘고 전화도 쉴 새 없이 걸려온다.

공무원들이 사무실에 묶여 있다 보니 기초생활보장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사각지대에 방치되는 일도 많다. 임 팀장은 "스스로 혜택을 받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만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며 "종교 단체나 이웃 주민들이 알려준 뒤에야 대상자를 파악하고 생계급여를 지급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박현숙 서울 종로1~4가주민센터 사회복지사는 "육아휴직으로 빠져 있는 직원의 빈자리도 채워지지 않고 있다"며 "복지 이외의 업무까지 떠맡아 해야 할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이런 현실을 복지 담당 공무원들은 '깔때기 현상'이라고 표현한다. 복지 정책의 종류와 예산은 늘어나는데 이를 집행할 공무원은 늘지 않으니 업무가 집중되고 수요자들에게 혜택이 전해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2005년부터 2009년 사이에 공무원 한 명이 집행해야 할 사회복지 분야의 국고보조사업 예산은 3억3055만원에서 5억8520만원으로 77.0% 늘었다.

◆부정 수급자 매년 증가

복지 담당 공무원들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사이 엉뚱한 곳으로 새는 예산이 늘어나고 있다. 소득을 감춘 채 기초생활보장을 받는 등 부당하게 복지 혜택을 받아도 잡아내기 어렵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일용직이거나 노점상을 하는 경우가 많아 소득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방문 조사를 해야 하는데 지금의 인력 상황에서는 여의치 않다.

기초생활보장 부정 수급을 받다가 적발된 세대 수는 2005년 5만7191세대에서 2008년 9만9511세대로 3년 만에 73.9%(4만2320세대) 증가했다. 수급 자격이 없는데 수급자로 지정됐거나 정해진 것 이상으로 생계 급여를 받은 세대를 합친 수치다. 2008년 기초생활보장 대상 85만4205세대 중 11.6%는 부정 또는 과다 수급자였던 셈이다. 적발되지 않은 세대까지 포함하면 부정 수급 세대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일선 공무원들은 전한다. 기초생활보장 외에 실업급여 등 각종 사회보험의 부정 수급액도 무시할 수 없다.

서울 종로구청의 한 관계자는 "기초생활수급자들이 몰려 사는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서는 같은 번지에 수십 명이 주민등록을 해 놓고 각각 생계급여를 지급받는 경우도 있다"며 "집주인의 실거주 확인 도장만 받으면 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다"고 전했다. '쪽방촌'에 사는 김선익씨는 "사회복지사가 집집마다 직접 돌아다니며 확인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니까 생전 보지도 못한 사람이 같은 번지수에 산다면서 동사무소에서 돈을 타간다"며 "부정 수급으로 늙어 죽을 때까지 먹고 살 걱정이 없다는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부정 수급자에 대한 제재 수단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기초생활보장의 경우 부정 수급으로 적발되더라도 수급 자격이 박탈되거나 지급액이 감액되는 것 외에는 불이익이 없다. 적발되기 전 부당하게 받았던 돈을 강제로 징수하지 않는다.

유한욱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부당 수급에 대해서는 벌금을 부과하는 등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며 "낭비되는 예산을 줄이면 그만큼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재원이 마련돼 제도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맞춤형 복지 시급

예산의 증가 속도에는 못 미치지만 복지 담당 공무원 수의 증가 속도는 빠른 편이다. 복지 담당 공무원 수는 지난 5년간 40% 이상 늘었다.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담당 공무원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어 복지 행정의 비대화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를 수 있다. 복지 관련 업무를 공공 부문이 거의 전담하다 보니 생긴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또 복지 정책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계층별로 접근하기보다는 개인의 상황에 맞춘 '맞춤형 복지'로 옮겨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정한 기준에 따라 지원 대상자가 정해지면 정부에서 내려온 예산에 맞춰 급여를 지급하기에 급급한 지금 체제로는 투입한 만큼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부정수급 적발 등 사후관리도 힘들다는 것이다.

노대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도 가족 구성이나 취업 상태 등에 따라 처지가 제각각"이라며 "빈곤에 빠진 경로와 기간까지 고려한 세심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사회복지사는 "지역 사회의 특성에 맞는 창의적인 복지 행정을 펼쳐야 한다"며 알코올 중독자를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마법천사 프로그램'의 사례를 소개했다. 서울 종로1~4가주민센터는 이 지역의 기초생활보장 대상자 중 알코올 중독자가 많다는 점에 착안,3개월간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교육에 참가하면 30만원의 후원금을 지급하기로 한 결과 지금까지 68명이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박 사회복지사는 "프로그램에 참가한 사람들 대부분이 알코올 중독을 극복하고 일자리를 얻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전했다.

유승호/이상은/서기열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