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여행] 약수 한잔이 법문이요 백련 한송이가 미소라…철새들의 천국에선 내가 철새였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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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
800년전 놓았다는 무지개 돌다리 지나면
탁수에 물들지 않고 피어난 연꽃이 맞이하고…
800년전 놓았다는 무지개 돌다리 지나면
탁수에 물들지 않고 피어난 연꽃이 맞이하고…
아득한 선사시대의 추억으로 스며들다
성산 맞바라기 당산에는 가음정동고분군이 있다. 널무덤 · 돌널무덤 · 돌방무덤 · 독무덤 등 가야시대 때 다양한 형태의 고분들이 밀집해 있어 옛 무덤의 변천 과정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발굴을 끝낸 무덤들은 밋밋한 평토(平土)다. 길 건너 창원 남중에는 청동기시대 무덤인 남방식 고인돌 1기가 있다. 이 밖에도 이 지역에선 청동기시대부터 가야시대에 이르는 각종 취락시설,패총,논 등이 발굴됐다. 만약 도로 등에 의해 끊기지 않았다면 가음정동 당산에서 외동 성산패총에 이르는 문화유적 회랑(回廊)을 유유자적 거닐 수 있었을 텐데….
신라 흥덕왕 때 무염국사가 창건했다는 불모산 성주사는 임진왜란 때 전소한 절을 중건할 적에 곰이 불사를 도왔다 해서 '곰 절'이라고도 부른다. 초하루 법회가 있는 날이라 그런지 절집은 보살들로 북새통이다.
영산전에는 다양한 색깔의 법의를 걸친 16나한상과 권속들이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다. 희로애락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나한상들에선 인간적 체취가 풍긴다. 약수터에서 물 한 모금을 마신다. 어디 이 약수처럼 청량한 법문 하나 없을까.
나를 매혹시킨 불각(不刻)의 미
창원향교를 거쳐 현대 조각의 선구자 김종영(1915~1982) 생가를 찾아간다. 담쟁이덩굴이 기어오르는 고풍스러운 돌담을 돌아 솟을대문 앞에 이르렀다. 김종영 생가(등록문화재 제200호)는 굳게 닫혀 있다. 근처 빌딩에 올라가 생가를 내려다볼 수밖에.'ㄷ자' 형 본채에 아래채 · 문간채가 딸린 아담한 기와집이다. 이 한옥이 이원수가 동요 '고향의 봄'에서 '꽃대궐'로 묘사했던 그 집이다. 앞마당엔 상록활엽관목인 남천,뒤뜰엔 대숲과 감나무 · 칠엽수가 운치를 더했다.
한때 김종영의 조각에 반해 북한산 자락 평창동의 김종영미술관을 들락거린 적이 있다. 불필요한 선을 철저하게 절제한,불각(不刻)의 미가 나를 매혹시켰던 것이다. 바로 옆 카페에서 마시던 30㎖정도의 양 적은 에스프레소 커피도 군더더기 없는 예술이었다.
주남저수지로 가는 길목인 동읍 신방초등학교 뒤엔 음나무군(천연기념물 제164호)이 있다. 이곳엔 700세 넘은 음나무(엄나무) 4그루와 그 자손들이 자라고 있다. 높이 30m,둘레 3.60m가 넘는 커다란 음나무 가지가 길까지 뻗어 있다. 닭백숙에 넣는 젓가락만 한 나무만 보아온 내겐 상상이 안 되는 크기다. 외따로 사는 생리를 지닌 음나무가 이렇게 군락을 이룬 것은 이 나무가 마귀를 쫓아주는 마을의 수호신이라고 믿는 주민의 '비호' 가 있었기 때문일 터이다.
조금 아래로 걸어가자 30기의 가야 무덤이 있는 의창다호리고분군(사적 제327호)이 나온다. 동판저수지 옆 저습한 평지와 그 위쪽의 야트막한 구릉지대가 다호리 고분군이 있던 자리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건 다랑논과 밭,과수원뿐이다. 발굴 결과 이곳 고분들은 독무덤(옹관묘)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이 널무덤(목관묘)이었다.
출토된 유물은 구유형 나무널,문자 생활의 증거인 붓,가야금의 원조인 현악기 등과 중국 거울인 성운경(星雲鏡)과 한나라 화폐인 오수전 등이었다. 오수전은 다호리고분이 기원전 1세기에서 서기 1세기 후반 사이의 유적임을 알려주는 유물이다.
철새들의 상그릴라 주남저수지
주남저수지에 닿기 전,동읍의 판신마을과 대산면의 고등포마을을 이어주는 주남돌다리(경남 문화재자료 제225호)에 먼저 들른다. 800여 년 전,양쪽 마을 사람들이 정병산 봉우리에서 돌을 옮겨와 다리를 놓았다는 전설을 품은 이 돌다리는 자연석을 포개 4개의 교각을 세운 위에 판석을 얹은 무지개 다리다. 집중호우로 붕괴한 것을 1996년 무너진 판석을 찾아 복원한 것.조심조심 다리를 건너간다. 이 돌다리에는 사람의 실핏줄에서나 느끼는 따스함이 있다.
1920년에 축조한 주남저수지는 너른 늪지 · 갈대 군락 · 버드나무군락 등이 있어 저수 기능보다 철새 도래지로 더 각광 받는 곳이다. 저수량이 일정한데다 개구리밥 · 붕어마름 등 먹이가 풍부해 겨울엔 고니 · 재두루미 · 노랑부리저어새 · 가창오리 · 쇠기러기 등 150여 종이 넘는 철새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우렁을 찾는 중대백로들만이 한가로이 거닐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이곳의 진짜 철새는 나를 포함한 탐방객들인지 모른다. 영혼의 집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 유목이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탐방로 가에는 목화가 심어져 있다. 목화 열매인 다래는 아직 여물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엔 다래를 따 먹으면서 긴 여름날의 허기를 달랬다. 가난에는 사람의 심성을 맑게 하는 순기능이 있다.
저수지에는 홍련과 백련이 눈부시도록 곱게 피었다. 고여 있는 막막한 삶,정체(停滯)된 삶 속에서도 진흙과 탁수(濁水)에 물들지 않은 채 청정하게 피어난 연꽃들이 내게 묻는다. "우리가 네 삶의 롤모델이 될 수는 없느냐?"라고.난 그 물음에 즉각 답하기는커녕 우물쭈물 궁색한 변명거리나 찾을 뿐이다. 그러나 어쩔 것이랴.이미 내 삶은 우렁이나 찾아 논바닥을 어슬렁거리는 저 중대백로의 삶에 가까운 것을….
안병기 여행작가
◆맛집
전주비빔밥과 해장국 전문집인 상남시장 맞은편 산정식당(055-285-6646)은 근방에서는 맛깔스런 반찬과 먹을거리로 소문난 집이다. 전주 본고장 사람이 운영하는 이곳에선 어렴풋이나마 전주비빔밥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이 집이 내놓는 막걸리에 흑설탕·대추·계피·생강·인삼 등을 넣고 은근한 불에 3~4시간 달인 '술 깨는 술' 모주의 맛은 일품이다. 그러나 해장 음료인 모주의 맛이 달짝지근하고 입맛 당긴다 하여 2,3잔 연거푸 들이키면 전날 밤에 마신 술까지 올라와 자칫 작취미상에 이를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대중없이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을 놀리는 '모주꾼'이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전주비빔밥 5000원,전주콩나물 해장국 4000원,맑은 삼겹살 4000원)
◆여행 팁
경남 창원시 북면 신촌리 마금산온천은 수온 55℃ 이상을 유지하는 국내 유일의 약알칼리성 식염천으로 알려졌다.《신증동국여지승람》산천조에 '창원도호부 북쪽 20리 지점에 온정(溫井)이 있다'고 했으나 온정이 마금산온천을 지칭하는지는 알 수 없다. 천주산,마금산,천마산 등 주변의 산을 등산한 후 온천욕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분지형 도시인 창원에서 유일하게 바다와 접할 수 있는 삼귀 해안은 울창한 숲과 수려한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며 해안선 일주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즐기기 좋은 곳이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마창대교도 시원스런 볼거리 중 하나다.
성산 맞바라기 당산에는 가음정동고분군이 있다. 널무덤 · 돌널무덤 · 돌방무덤 · 독무덤 등 가야시대 때 다양한 형태의 고분들이 밀집해 있어 옛 무덤의 변천 과정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발굴을 끝낸 무덤들은 밋밋한 평토(平土)다. 길 건너 창원 남중에는 청동기시대 무덤인 남방식 고인돌 1기가 있다. 이 밖에도 이 지역에선 청동기시대부터 가야시대에 이르는 각종 취락시설,패총,논 등이 발굴됐다. 만약 도로 등에 의해 끊기지 않았다면 가음정동 당산에서 외동 성산패총에 이르는 문화유적 회랑(回廊)을 유유자적 거닐 수 있었을 텐데….
신라 흥덕왕 때 무염국사가 창건했다는 불모산 성주사는 임진왜란 때 전소한 절을 중건할 적에 곰이 불사를 도왔다 해서 '곰 절'이라고도 부른다. 초하루 법회가 있는 날이라 그런지 절집은 보살들로 북새통이다.
영산전에는 다양한 색깔의 법의를 걸친 16나한상과 권속들이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다. 희로애락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나한상들에선 인간적 체취가 풍긴다. 약수터에서 물 한 모금을 마신다. 어디 이 약수처럼 청량한 법문 하나 없을까.
나를 매혹시킨 불각(不刻)의 미
창원향교를 거쳐 현대 조각의 선구자 김종영(1915~1982) 생가를 찾아간다. 담쟁이덩굴이 기어오르는 고풍스러운 돌담을 돌아 솟을대문 앞에 이르렀다. 김종영 생가(등록문화재 제200호)는 굳게 닫혀 있다. 근처 빌딩에 올라가 생가를 내려다볼 수밖에.'ㄷ자' 형 본채에 아래채 · 문간채가 딸린 아담한 기와집이다. 이 한옥이 이원수가 동요 '고향의 봄'에서 '꽃대궐'로 묘사했던 그 집이다. 앞마당엔 상록활엽관목인 남천,뒤뜰엔 대숲과 감나무 · 칠엽수가 운치를 더했다.
한때 김종영의 조각에 반해 북한산 자락 평창동의 김종영미술관을 들락거린 적이 있다. 불필요한 선을 철저하게 절제한,불각(不刻)의 미가 나를 매혹시켰던 것이다. 바로 옆 카페에서 마시던 30㎖정도의 양 적은 에스프레소 커피도 군더더기 없는 예술이었다.
주남저수지로 가는 길목인 동읍 신방초등학교 뒤엔 음나무군(천연기념물 제164호)이 있다. 이곳엔 700세 넘은 음나무(엄나무) 4그루와 그 자손들이 자라고 있다. 높이 30m,둘레 3.60m가 넘는 커다란 음나무 가지가 길까지 뻗어 있다. 닭백숙에 넣는 젓가락만 한 나무만 보아온 내겐 상상이 안 되는 크기다. 외따로 사는 생리를 지닌 음나무가 이렇게 군락을 이룬 것은 이 나무가 마귀를 쫓아주는 마을의 수호신이라고 믿는 주민의 '비호' 가 있었기 때문일 터이다.
조금 아래로 걸어가자 30기의 가야 무덤이 있는 의창다호리고분군(사적 제327호)이 나온다. 동판저수지 옆 저습한 평지와 그 위쪽의 야트막한 구릉지대가 다호리 고분군이 있던 자리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건 다랑논과 밭,과수원뿐이다. 발굴 결과 이곳 고분들은 독무덤(옹관묘)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이 널무덤(목관묘)이었다.
출토된 유물은 구유형 나무널,문자 생활의 증거인 붓,가야금의 원조인 현악기 등과 중국 거울인 성운경(星雲鏡)과 한나라 화폐인 오수전 등이었다. 오수전은 다호리고분이 기원전 1세기에서 서기 1세기 후반 사이의 유적임을 알려주는 유물이다.
철새들의 상그릴라 주남저수지
주남저수지에 닿기 전,동읍의 판신마을과 대산면의 고등포마을을 이어주는 주남돌다리(경남 문화재자료 제225호)에 먼저 들른다. 800여 년 전,양쪽 마을 사람들이 정병산 봉우리에서 돌을 옮겨와 다리를 놓았다는 전설을 품은 이 돌다리는 자연석을 포개 4개의 교각을 세운 위에 판석을 얹은 무지개 다리다. 집중호우로 붕괴한 것을 1996년 무너진 판석을 찾아 복원한 것.조심조심 다리를 건너간다. 이 돌다리에는 사람의 실핏줄에서나 느끼는 따스함이 있다.
1920년에 축조한 주남저수지는 너른 늪지 · 갈대 군락 · 버드나무군락 등이 있어 저수 기능보다 철새 도래지로 더 각광 받는 곳이다. 저수량이 일정한데다 개구리밥 · 붕어마름 등 먹이가 풍부해 겨울엔 고니 · 재두루미 · 노랑부리저어새 · 가창오리 · 쇠기러기 등 150여 종이 넘는 철새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우렁을 찾는 중대백로들만이 한가로이 거닐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이곳의 진짜 철새는 나를 포함한 탐방객들인지 모른다. 영혼의 집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 유목이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탐방로 가에는 목화가 심어져 있다. 목화 열매인 다래는 아직 여물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엔 다래를 따 먹으면서 긴 여름날의 허기를 달랬다. 가난에는 사람의 심성을 맑게 하는 순기능이 있다.
저수지에는 홍련과 백련이 눈부시도록 곱게 피었다. 고여 있는 막막한 삶,정체(停滯)된 삶 속에서도 진흙과 탁수(濁水)에 물들지 않은 채 청정하게 피어난 연꽃들이 내게 묻는다. "우리가 네 삶의 롤모델이 될 수는 없느냐?"라고.난 그 물음에 즉각 답하기는커녕 우물쭈물 궁색한 변명거리나 찾을 뿐이다. 그러나 어쩔 것이랴.이미 내 삶은 우렁이나 찾아 논바닥을 어슬렁거리는 저 중대백로의 삶에 가까운 것을….
안병기 여행작가
◆맛집
전주비빔밥과 해장국 전문집인 상남시장 맞은편 산정식당(055-285-6646)은 근방에서는 맛깔스런 반찬과 먹을거리로 소문난 집이다. 전주 본고장 사람이 운영하는 이곳에선 어렴풋이나마 전주비빔밥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이 집이 내놓는 막걸리에 흑설탕·대추·계피·생강·인삼 등을 넣고 은근한 불에 3~4시간 달인 '술 깨는 술' 모주의 맛은 일품이다. 그러나 해장 음료인 모주의 맛이 달짝지근하고 입맛 당긴다 하여 2,3잔 연거푸 들이키면 전날 밤에 마신 술까지 올라와 자칫 작취미상에 이를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대중없이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을 놀리는 '모주꾼'이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전주비빔밥 5000원,전주콩나물 해장국 4000원,맑은 삼겹살 4000원)
◆여행 팁
경남 창원시 북면 신촌리 마금산온천은 수온 55℃ 이상을 유지하는 국내 유일의 약알칼리성 식염천으로 알려졌다.《신증동국여지승람》산천조에 '창원도호부 북쪽 20리 지점에 온정(溫井)이 있다'고 했으나 온정이 마금산온천을 지칭하는지는 알 수 없다. 천주산,마금산,천마산 등 주변의 산을 등산한 후 온천욕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분지형 도시인 창원에서 유일하게 바다와 접할 수 있는 삼귀 해안은 울창한 숲과 수려한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며 해안선 일주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즐기기 좋은 곳이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마창대교도 시원스런 볼거리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