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잠실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해온 김모씨(50)는 최근 중개업소 문을 닫은 뒤 살아갈 길이 막막해졌다. 중견기업 부장으로 일하던 그는 2008년 10월 금융위기 직후 명예퇴직을 한 뒤 모은 돈으로 중개업소를 열었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극도로 침체되면서 임대료를 내기도 빠듯했다. 최근 3개월 동안에는 한 건의 거래도 성사시키지 못했다. 김씨는 "자영업자는 문을 닫더라도 실직자가 받는 실업급여를 못받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다"며 "재취업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여의치 않아 일용직이라도 나서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빈곤의 늪으로 빠져드는 영세 자영업자는 되레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과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자영업자 수는 551만4000명으로 1999년 1분기(543만9000명) 이후 11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2분기(607만3000명)와 비교하면 55만9000명 감소한 것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단기간 감소폭으로는 최대"라며 "경기에 민감한 음식 · 숙박업과 부동산중개업 분야 자영업자들의 몰락이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특히 경제위기를 겪을 때마다 자영업자가 몰락하는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외환위기 전 600만명에 달했던 자영업자는 외환위기 이후 550만명 밑으로 줄었다. 이후 직장에서 쫓겨난 샐러리맨들이 자영업자 대열에 합류하면서 한때(2002년 3분기) 630만명까지 증가했다. 하지만 카드 사태가 터지면서 다시 50만명에 달하는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았다.

중기청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영업자의 3차 구조조정이 본격화하고 있다"며 "최근 수출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는 경기 회복에서 소외된 자영업자들의 몰락이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문닫은 영세 자영업자들이 대거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전체 경제활동인구 대비 자영업자 비율은 2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5.8%에 비해 높다"며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자영업자들의 몰락은 서민경제,나아가 사회 전체의 활력 감퇴로 이어진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임금 근로자 위주로 짜여진 실업급여 등 고용보험 정책은 자영업자가 많은 한국의 고용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며 "경제위기로 가장 먼저 타격받는 영세 자영업자들의 실직을 구제해줄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