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공장' 중국은 지난해 독일을 제치고 세계 1위 수출국이 됐다. 제조대국에 이어 무역대국이 된 중국은 이젠 금융대국을 향해가고 있다. 상하이는 뉴욕과 런던에 버금가는 세계 금융허브가 되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다. 상하이에서 외국 기업에 위안화 표시 채권 발행을 허용한 데 이어 이르면 올해부터 외국 기업의 상하이 증시 상장을 허용키로 한 게 대표적이다. 베이징 · 톈진 · 샤먼 · 선양 등 금융허브를 자처하는 도시들도 잇따르고 있다.

《자본의 전략》은 중국이 강대국이 되기 위해선 금융시장 현대화가 불가피한 과제임을 강대국의 흥망사를 통해 명쾌하게 설파한다.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서구의 도약이 약탈에서 기인했다는 기존의 인식은 잘못된 것이며 금융시장의 발전 덕분이었다고 지적한다.

식민지로부터 약탈한 금은보화로 왕실이 호화로운 생활을 하다 망한 스페인과 포르투갈,해상무역과 기술혁신을 통해 각각 대국으로 도약한 영국과 미국은 좋은 비교 대상이다. 해상무역 리스크를 여러 주주들에게 분담시킨 동인도 같은 주식회사 제도와 보험 등의 발전은 영국을,기술혁신을 촉진시킨 증시의 발전은 미국을 강대국으로 만든 DNA였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특히 미국 사회가 투기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면 주식 문화가 발달하지 못해 과거 150여년간 이룩한 과학기술의 발전도 없었을 것이라며 투기 활동을 옹호한다. 중국 역대 왕조의 건립 초기에 국고가 가득했지만 재정위기로 멸망한 것도 이 같은 금융의 DNA를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중국도 개혁 개방을 하면서 주식시장을 만들고 국채를 발행함에 따라 죽어있는 '부(富)'를 자본화하기 시작했다. 재정적자를 내면서 성장을 견인하는 정책은 유교적 개념에 위배되지만 오히려 중국의 위상은 커졌다는 것이다. 정부가 책임지던 주택보급을 시장에 맡기기 시작한 1998년 부동산 개혁도 주택담보 대출을 등장시킴으로써 토지와 부동산은 물론 국민의 미래소득까지 자본화하는 문을 열었다.

특히 비유통주를 유통화시키는 주식 개혁이 마무리되면서 미국 증시처럼 빠르게 부를 창출하고 혁신문화 발전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중국이 자본화의 달콤함을 맛봤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저자는 충고한다. 미국의 증시와 채권시장,주택담보대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1.56배,2.1배,0.9배인 반면 중국은 0.8배,0.01배,0.11배에 머물고 있다.

문제는 사회가 민주화돼야 금융이 발전한다는 데 있다. 중국은 시장경제를 지향하면서도 정치제도는 공산당 일당독재의 사회주의를 고집한다. 13세기 서유럽의 도시국가들은 민권의 견제로 증세가 힘들어지자 공채를 발행해 미래의 수입을 현금화했다.

그러나 중국 전제 왕조는 견제 세력이 없었던 탓에 채무부담을 줄일 장기채권 발행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결국 증세와 화폐를 찍어내는 데 몰두하다 멸망하게 됐다. 이 같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