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운전도 일이네‥부장과 '불편한 카풀' 한 달…"그냥 버스타고 다닐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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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운전기사야?
좋은차 타면 안되나요
좋은차 타면 안되나요
중견기업에 다니는 황선호 과장(36)은 요즘 출 · 퇴근길이 고역이다. 짜증나는 더위 때문이 아니다. 최근 옆동네로 이사온 부장을 자신의 차로 매일같이 모셔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이다. 어차피 심심한 출 · 퇴근길,말동무해줄 길벗이 생겨 좋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정작 황 과장은 죽을 맛이다. 운전석 옆자리에 앉는 부장은 1시간 가까운 출 · 퇴근 시간 동안 잔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저쪽 차선으로 끼어 들어라","앞차 좀 추월하라"는 등 시시콜콜 참견한다. 그러다보니 황 과장은 부장을 모시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이유를 찾기 바쁘다.
김 과장과 이 대리에게는 운전도 업무의 연장이다. 조직생활을 하는 만큼 상사를 태우고 운전을 해야 할 경우가 많아서다. 마음 맞고 대화가 통하는 상사라면 운전이 즐거울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 밀폐된 공간의 숨 막힐 듯한 어색함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피곤한 '운짱' 노릇
상사의 '운짱(운전기사)' 노릇은 피곤한 김 과장,이 대리들의 직장생활을 팍팍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박진만 차장(37)은 3년 전 상사의 권유로 골프를 배운 걸 후회하고 있다. 배울 땐 좋았는데 상사가 주말마다 거래처와 골프 약속을 잡은 뒤 '자신을 태워가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박 차장의 집은 서울 잠실,상사의 집은 서울 도봉구 쌍문동이다. 그들이 찾는 골프장은 대부분 경기도 남쪽에 있다. 상사의 집까지 들렀다가 골프장까지 가려면 밤잠을 설쳐야 한다.
박 차장은 "자는 둥 마는 둥 새벽 3시께 일어나 서두르는 것도 힘들지만 골프장에서 맥주라도 한잔 하고 막히는 경부고속도로에서 서너시간을 운전할라 치면 졸음이 쏟아져 아주 고역"이라며 "팔짱 끼고 드러누워 코를 고는 상사에게 헛주먹질을 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대리비 3만원이 그렇게 아깝더냐
대기업에 다니는 이준호 과장(36)은 소주 한잔만 먹어도 피아 구별을 못할 정도로 술에 약하다. 이런 그를 직속팀장은 항상 술자리에 데리고 나간다. 처음엔 저녁 약속장소에 자신을 꼭 데려가는 팀장이 고마웠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팀장의 속셈을 눈치챘다. 저녁 술자리가 끝날 때마다 팀장은 이 과장에게 자신의 자동차 키를 넘겼다. 대신 운전해 달라는 요구였다. 차를 몰고 팀장 집까지 가면 팀장은 택시비는커녕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집으로 쌩 올라가 버린다. 대리운전비를 아끼기 위해 자신을 술자리에 데려간다고 생각하니 자존심이 상했다. 그가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은 먼저 취하기.술자리에서 술을 몇 잔 마신 뒤 해롱거린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김없이 자동차 키를 넘기는 팀장에게 "오늘은 제가 만취해서…"라며 말끝을 흐리는 걸로 대리기사 역할을 고사한다.
◆사고나면 아랫것들만 억울
직장 동료끼리 자동차 사고가 나는 경우엔 아예 모르는 사람들보다 처리가 곤란하게 마련이다. 매일 얼굴 보는 사이에 야박하게 수리비를 물어 내라고 하기도 어렵고,내 돈 내고 고치기엔 속이 상한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정일모 대리(32)는 야외로 회사 워크숍을 갔다가 다음 날 아침 자신의 차량 뒷 범퍼가 부서진 것을 발견했다. 술에 취한 누군가가 그의 차를 박고 도망가 버린 것.그보다 앞서 떠난 팀원 5~6명을 대상으로 탐문을 했지만 모두가 '나는 아니다'고 부인했다. 정 대리는 "회사 선배가 범인인 것 같은데 대놓고 따지기가 뭣해서 그냥 30만원을 들여 수리했다"고 전했다.
◆좋은 차도 '짬밥 순'
차에 대한 소유욕이 강한 김 과장,이 대리들 중에는 '짬밥' 때문에 눈물을 머금는 사례가 적지 않다. 상사보다 좋은 차를 타선 안 된다는 암묵적인 압력 때문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11년차 박민상 과장(36)은 "차를 사면서 기왕이면 그랜저를 뽑고 싶었지만 쏘나타를 타는 상사 눈치를 보느라 포기했다"고 했다. 그는 "돈 좀 있는 동료들의 경우 자기 차는 상사를 의식해서 작은 걸로 몰고 와이프 차를 외제차로 뽑아서 휴일에만 자기가 끌고 다니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통역요원을 모집했던 한 공기업에서는 '물 좋은 신입사원'들이 대거 외제차를 끌고 회사에 오는 바람에 파문이 일었던 적도 있다. 이 기업 관계자는 "어느 날 갑자기 주차장에 벤츠 폭스바겐 아우디가 나타났는데 알고보니 죄다 신입사원 차라고 해서 기가 막혔다"며 "사내 분위기를 파악한 이들이 이후로는 '저렴한 차'로 바꿔서 끌고 오더라"고 귀띔했다.
◆아무나 주차하는 거 아냐
주차공간에도 위계질서가 적용된다. 자기차를 가진 직원들 비율이 높아졌지만 주차 공간은 제한된 탓에 대부분 기업들은 임원에게만 주차를 허용한다. 현대자동차 서울 양재동 사옥 등이 그런 사례다. 한 건설사에 다니는 김모 대리는 "신입사원일 때 뭘 모르고 마티즈를 끌고 회사에 갔다가 주차장에 가득한 '까만 차'들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주차를 허용받은 임원들이 주로 고급 검정 세단을 몰기 때문이다. 김 대리는 "주차장 관리직원이 나타나 정중하게 소속과 직급을 묻더니 '다음에는 가급적 차를 가져오지 말라'고 눈치를 줬다"고 회상했다. 광화문 정부중앙청사도 '국장급'이 되거나 특별한 사유를 인정받을 때만 차를 가져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구멍이 포도청
중견기업에 다니는 이상윤 대리(33)는 밥먹듯이 음주운전을 하는 부장이 못마땅하다. 부장은 술만 들어가면 운전대를 잡고 '광란의 레이스'를 벌여야만 직성이 풀린다. 싫다는 부하들까지 옆자리 혹은 뒷자리에 태우고는 "집에 가서 한잔 더"를 외치는 게 정해진 레퍼토리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평소처럼 부하들을 볼모로 삼아 '질주'를 끝낸 그는 혼자 차를 몰고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다 경비원의 발등을 친 줄도 모르고 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잠을 자고 난 아침에 경찰이 들이닥쳐 음주뺑소니 사고로 그를 연행했다. 이 대리가 엮여 들어간 게 이 시점이다.
궁지에 몰린 부장은 이 대리에게 "술을 먹지 않았다고 증언해 달라"고 했다. 이 대리는 결국 거짓증언을 하고 말았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오히려 부장이 나를 피하는 눈치 같아서 마음이 괴롭다"고 말했다.
이정호/이관우/이상은/이고운 기자 dolph@hankyung.com
김 과장과 이 대리에게는 운전도 업무의 연장이다. 조직생활을 하는 만큼 상사를 태우고 운전을 해야 할 경우가 많아서다. 마음 맞고 대화가 통하는 상사라면 운전이 즐거울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 밀폐된 공간의 숨 막힐 듯한 어색함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피곤한 '운짱' 노릇
상사의 '운짱(운전기사)' 노릇은 피곤한 김 과장,이 대리들의 직장생활을 팍팍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박진만 차장(37)은 3년 전 상사의 권유로 골프를 배운 걸 후회하고 있다. 배울 땐 좋았는데 상사가 주말마다 거래처와 골프 약속을 잡은 뒤 '자신을 태워가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박 차장의 집은 서울 잠실,상사의 집은 서울 도봉구 쌍문동이다. 그들이 찾는 골프장은 대부분 경기도 남쪽에 있다. 상사의 집까지 들렀다가 골프장까지 가려면 밤잠을 설쳐야 한다.
박 차장은 "자는 둥 마는 둥 새벽 3시께 일어나 서두르는 것도 힘들지만 골프장에서 맥주라도 한잔 하고 막히는 경부고속도로에서 서너시간을 운전할라 치면 졸음이 쏟아져 아주 고역"이라며 "팔짱 끼고 드러누워 코를 고는 상사에게 헛주먹질을 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대리비 3만원이 그렇게 아깝더냐
대기업에 다니는 이준호 과장(36)은 소주 한잔만 먹어도 피아 구별을 못할 정도로 술에 약하다. 이런 그를 직속팀장은 항상 술자리에 데리고 나간다. 처음엔 저녁 약속장소에 자신을 꼭 데려가는 팀장이 고마웠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팀장의 속셈을 눈치챘다. 저녁 술자리가 끝날 때마다 팀장은 이 과장에게 자신의 자동차 키를 넘겼다. 대신 운전해 달라는 요구였다. 차를 몰고 팀장 집까지 가면 팀장은 택시비는커녕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집으로 쌩 올라가 버린다. 대리운전비를 아끼기 위해 자신을 술자리에 데려간다고 생각하니 자존심이 상했다. 그가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은 먼저 취하기.술자리에서 술을 몇 잔 마신 뒤 해롱거린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김없이 자동차 키를 넘기는 팀장에게 "오늘은 제가 만취해서…"라며 말끝을 흐리는 걸로 대리기사 역할을 고사한다.
◆사고나면 아랫것들만 억울
직장 동료끼리 자동차 사고가 나는 경우엔 아예 모르는 사람들보다 처리가 곤란하게 마련이다. 매일 얼굴 보는 사이에 야박하게 수리비를 물어 내라고 하기도 어렵고,내 돈 내고 고치기엔 속이 상한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정일모 대리(32)는 야외로 회사 워크숍을 갔다가 다음 날 아침 자신의 차량 뒷 범퍼가 부서진 것을 발견했다. 술에 취한 누군가가 그의 차를 박고 도망가 버린 것.그보다 앞서 떠난 팀원 5~6명을 대상으로 탐문을 했지만 모두가 '나는 아니다'고 부인했다. 정 대리는 "회사 선배가 범인인 것 같은데 대놓고 따지기가 뭣해서 그냥 30만원을 들여 수리했다"고 전했다.
◆좋은 차도 '짬밥 순'
차에 대한 소유욕이 강한 김 과장,이 대리들 중에는 '짬밥' 때문에 눈물을 머금는 사례가 적지 않다. 상사보다 좋은 차를 타선 안 된다는 암묵적인 압력 때문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11년차 박민상 과장(36)은 "차를 사면서 기왕이면 그랜저를 뽑고 싶었지만 쏘나타를 타는 상사 눈치를 보느라 포기했다"고 했다. 그는 "돈 좀 있는 동료들의 경우 자기 차는 상사를 의식해서 작은 걸로 몰고 와이프 차를 외제차로 뽑아서 휴일에만 자기가 끌고 다니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통역요원을 모집했던 한 공기업에서는 '물 좋은 신입사원'들이 대거 외제차를 끌고 회사에 오는 바람에 파문이 일었던 적도 있다. 이 기업 관계자는 "어느 날 갑자기 주차장에 벤츠 폭스바겐 아우디가 나타났는데 알고보니 죄다 신입사원 차라고 해서 기가 막혔다"며 "사내 분위기를 파악한 이들이 이후로는 '저렴한 차'로 바꿔서 끌고 오더라"고 귀띔했다.
◆아무나 주차하는 거 아냐
주차공간에도 위계질서가 적용된다. 자기차를 가진 직원들 비율이 높아졌지만 주차 공간은 제한된 탓에 대부분 기업들은 임원에게만 주차를 허용한다. 현대자동차 서울 양재동 사옥 등이 그런 사례다. 한 건설사에 다니는 김모 대리는 "신입사원일 때 뭘 모르고 마티즈를 끌고 회사에 갔다가 주차장에 가득한 '까만 차'들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주차를 허용받은 임원들이 주로 고급 검정 세단을 몰기 때문이다. 김 대리는 "주차장 관리직원이 나타나 정중하게 소속과 직급을 묻더니 '다음에는 가급적 차를 가져오지 말라'고 눈치를 줬다"고 회상했다. 광화문 정부중앙청사도 '국장급'이 되거나 특별한 사유를 인정받을 때만 차를 가져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구멍이 포도청
중견기업에 다니는 이상윤 대리(33)는 밥먹듯이 음주운전을 하는 부장이 못마땅하다. 부장은 술만 들어가면 운전대를 잡고 '광란의 레이스'를 벌여야만 직성이 풀린다. 싫다는 부하들까지 옆자리 혹은 뒷자리에 태우고는 "집에 가서 한잔 더"를 외치는 게 정해진 레퍼토리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평소처럼 부하들을 볼모로 삼아 '질주'를 끝낸 그는 혼자 차를 몰고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다 경비원의 발등을 친 줄도 모르고 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잠을 자고 난 아침에 경찰이 들이닥쳐 음주뺑소니 사고로 그를 연행했다. 이 대리가 엮여 들어간 게 이 시점이다.
궁지에 몰린 부장은 이 대리에게 "술을 먹지 않았다고 증언해 달라"고 했다. 이 대리는 결국 거짓증언을 하고 말았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오히려 부장이 나를 피하는 눈치 같아서 마음이 괴롭다"고 말했다.
이정호/이관우/이상은/이고운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