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 못지않은 한교 네트워크 만들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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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서 백작 작위 받은 권병하 헤니권그룹 회장
전기제품 제조·수출로 한해 1억6천만달러 매출 올려
전기제품 제조·수출로 한해 1억6천만달러 매출 올려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처럼 화교들이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나라가 많지 않습니까. 우리도 이젠 한교(韓僑)를 형성해 더 넓은 세계를 만들어 나가야죠."
말레이시아 헤니권그룹의 권병하 회장(61)은 지난 7일 기자와 만나 "한국의 젊은이들이 넓고 큰 생각을 갖고 해외에 도전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8일까지 중국 선양시에서 열린 글로벌 한상(韓商)대회에 참석한 권 회장은 말레이시아 정부로부터 백작 작위를 받은 성공한 기업인.직원 250명이 일하는 공장을 경영하며 40개국에 발전설비 등 전기제품을 수출,한 해 1억6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외자유치 설명회를 가질 때마다 그를 모범사례로 거론할 정도다.
권 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국제그룹에 입사했다. 4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1979년 사업을 시작했다. 무역업을 통해 돈을 쏠쏠히 벌었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혼란기를 거치면서 해외에서 사업하기로 결심했다. "나라가 안정이 안 되니까 바이어들이 자꾸 외면해 힘이 부친다고 느꼈죠.그때 회사 생활을 하면서 들락거렸던 말레이시아 생각이 나더라고요. "
그는 '압축성장'에 익숙한 한국 사람의 장점을 발휘하면 승산이 충분하다고 판단,과감히 말레이시아로 진출했다. 말레이시아는 영국의 통치를 받으며 합리적인 시스템이 자리 잡았고 전쟁이 없었던 덕에 사람들도 순박해 순조롭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권 회장은 "적어도 전기동력 장치 분야에서만큼은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이나 독일 지멘스에 뒤지지 않는 기술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며 "세계 초일류 제품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권 회장이 말레이시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장관은 물론 총리까지도 별 제한 없이 만날 수 있는 인사가 됐다는 점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현지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당연히 보답해야 한다"며 "말레이시아 국립대학의 한국어학과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경찰공무원 자녀에게도 매년 학자금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도 한국에서 사업하지 않고 말레이시아에 진출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며 "한국에서 아파트값이 폭등하고 증시거품이 생기면서 너무 쉽게 돈을 버는 모습을 보게 될 때 걱정이 생기곤 한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진출 초기부터 제조업을 고집했고 앞으로도 제조업에서 초일류 회사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권 회장은 "땀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후배들에게 입버릇처럼 전하곤 한다.
그는 "우리 세대는 열심히 공부하고 취직해 부모님께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을 누구나 갖고 있었지만 지금 젊은이들은 더 좋은 환경에 살아서인지 절박함이 없는 것 같다"며 "영어 등 외국어에도 능통하고 인터넷에도 익숙한 젊은 사람들이 넓은 세상을 보고 꿈을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말레이시아든 미국이든 해외에 진출하려는 사람들은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있어야 하며 철저한 시장조사를 거쳐 시행착오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회장은 "한국 사람들은 저력이 있으니 화교 같은 한교를 만들지 못하란 법이 없다"며 "한국 경제가 크게 성장했고 전 세계 어느 나라든 한국인들이 진출해 있는 만큼 한국 비즈니스맨 네트워크를 튼튼하게 만들어 한국 경제를 발전시키고 국가의 품격을 높여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선양=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
말레이시아 헤니권그룹의 권병하 회장(61)은 지난 7일 기자와 만나 "한국의 젊은이들이 넓고 큰 생각을 갖고 해외에 도전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8일까지 중국 선양시에서 열린 글로벌 한상(韓商)대회에 참석한 권 회장은 말레이시아 정부로부터 백작 작위를 받은 성공한 기업인.직원 250명이 일하는 공장을 경영하며 40개국에 발전설비 등 전기제품을 수출,한 해 1억6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외자유치 설명회를 가질 때마다 그를 모범사례로 거론할 정도다.
권 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국제그룹에 입사했다. 4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1979년 사업을 시작했다. 무역업을 통해 돈을 쏠쏠히 벌었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혼란기를 거치면서 해외에서 사업하기로 결심했다. "나라가 안정이 안 되니까 바이어들이 자꾸 외면해 힘이 부친다고 느꼈죠.그때 회사 생활을 하면서 들락거렸던 말레이시아 생각이 나더라고요. "
그는 '압축성장'에 익숙한 한국 사람의 장점을 발휘하면 승산이 충분하다고 판단,과감히 말레이시아로 진출했다. 말레이시아는 영국의 통치를 받으며 합리적인 시스템이 자리 잡았고 전쟁이 없었던 덕에 사람들도 순박해 순조롭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권 회장은 "적어도 전기동력 장치 분야에서만큼은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이나 독일 지멘스에 뒤지지 않는 기술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며 "세계 초일류 제품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권 회장이 말레이시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장관은 물론 총리까지도 별 제한 없이 만날 수 있는 인사가 됐다는 점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현지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당연히 보답해야 한다"며 "말레이시아 국립대학의 한국어학과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경찰공무원 자녀에게도 매년 학자금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도 한국에서 사업하지 않고 말레이시아에 진출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며 "한국에서 아파트값이 폭등하고 증시거품이 생기면서 너무 쉽게 돈을 버는 모습을 보게 될 때 걱정이 생기곤 한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진출 초기부터 제조업을 고집했고 앞으로도 제조업에서 초일류 회사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권 회장은 "땀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후배들에게 입버릇처럼 전하곤 한다.
그는 "우리 세대는 열심히 공부하고 취직해 부모님께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을 누구나 갖고 있었지만 지금 젊은이들은 더 좋은 환경에 살아서인지 절박함이 없는 것 같다"며 "영어 등 외국어에도 능통하고 인터넷에도 익숙한 젊은 사람들이 넓은 세상을 보고 꿈을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말레이시아든 미국이든 해외에 진출하려는 사람들은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있어야 하며 철저한 시장조사를 거쳐 시행착오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회장은 "한국 사람들은 저력이 있으니 화교 같은 한교를 만들지 못하란 법이 없다"며 "한국 경제가 크게 성장했고 전 세계 어느 나라든 한국인들이 진출해 있는 만큼 한국 비즈니스맨 네트워크를 튼튼하게 만들어 한국 경제를 발전시키고 국가의 품격을 높여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선양=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