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시장 5조원시대] (2) 80년대 버버리…90년대 아르마니…2000년대 루이비통·까르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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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명품산업 역사
한국 명품산업의 역사는 정부가 기성복과 핸드백,신발 등에 대해 수입을 허가한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로통상,웨어펀인터내셔널,삼경무역 등 '국내 명품 수입업 1세대'들이 이듬해부터 버버리나 아이그너,막스마라,에트로 등 외국 유명 브랜드를 공식 수입하면서다.
국내 초기 명품시장은 유로통상이 1986년 들여온 '버버리'가 주도했다. 임충식 유로통상 사장은 "당시 100만원을 호가하던 버버리코트는 시아버지 혼수 품목으로 꼽혔을 정도"라며 "1991년 단일 브랜드 매출이 100억원을 넘을 정도로 버버리는 명품의 대명사였다"고 회고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백화점 매장 1층에 수입 고가 브랜드 매장이 들어서면서 백화점이 명품 판매의 주요 유통채널로 자리잡았다. '호화 사치품'이나 '수입 고가품' 등으로 불리던 럭셔리 브랜드에 '명품'(名品)이란 말을 붙인 것도 백화점이다. 갤러리아백화점은 1990년 9월 청담동에 수입고가품 전용 매장을 열면서 '명품관'으로 이름지었고,현대백화점은 1991년 고가 수입 잡화 · 의류군을 별도의 상품군으로 독립시키면서 명품으로 불렀다.
1990년대 초 구찌(성주인터내셔널) 아르마니(신세계인터내셔날) 등이 공식 수입되면서 세력을 확장하던 명품산업은 1인당 국민 소득이 처음으로 1만달러를 넘어선 1994년을 전후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1991년 한국지사를 설립하고 국내 시장을 엿보던 루이비통과 샤넬이 1만달러 돌파를 기점으로 백화점에 대형 부티크 매장을 내는 작업을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루이비통은 1996년,샤넬은 1997년 갤러리아 명품관에 각각 국내 1호점을 낸다. 에르메스도 1997년 한국지사를 설립하고 갤러리아 명품관에 1호점을 열었다.
오일균 갤러리아백화점 상무(수원점장)는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명품관 입점 브랜드 중 40%가량이 휴업했지만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 등의 선전으로 전체 매출은 3% 정도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 들어선 루이비통, 까르띠에 등이 전성시대를 맞았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국내 초기 명품시장은 유로통상이 1986년 들여온 '버버리'가 주도했다. 임충식 유로통상 사장은 "당시 100만원을 호가하던 버버리코트는 시아버지 혼수 품목으로 꼽혔을 정도"라며 "1991년 단일 브랜드 매출이 100억원을 넘을 정도로 버버리는 명품의 대명사였다"고 회고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백화점 매장 1층에 수입 고가 브랜드 매장이 들어서면서 백화점이 명품 판매의 주요 유통채널로 자리잡았다. '호화 사치품'이나 '수입 고가품' 등으로 불리던 럭셔리 브랜드에 '명품'(名品)이란 말을 붙인 것도 백화점이다. 갤러리아백화점은 1990년 9월 청담동에 수입고가품 전용 매장을 열면서 '명품관'으로 이름지었고,현대백화점은 1991년 고가 수입 잡화 · 의류군을 별도의 상품군으로 독립시키면서 명품으로 불렀다.
1990년대 초 구찌(성주인터내셔널) 아르마니(신세계인터내셔날) 등이 공식 수입되면서 세력을 확장하던 명품산업은 1인당 국민 소득이 처음으로 1만달러를 넘어선 1994년을 전후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1991년 한국지사를 설립하고 국내 시장을 엿보던 루이비통과 샤넬이 1만달러 돌파를 기점으로 백화점에 대형 부티크 매장을 내는 작업을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루이비통은 1996년,샤넬은 1997년 갤러리아 명품관에 각각 국내 1호점을 낸다. 에르메스도 1997년 한국지사를 설립하고 갤러리아 명품관에 1호점을 열었다.
오일균 갤러리아백화점 상무(수원점장)는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명품관 입점 브랜드 중 40%가량이 휴업했지만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 등의 선전으로 전체 매출은 3% 정도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 들어선 루이비통, 까르띠에 등이 전성시대를 맞았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