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흑자가 늘어나면 국내로 들어오는 달러가 많아져 원 · 달러 환율이 하락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하지만 최근 대규모 무역흑자에도 불구하고 환율은 오르고 있다. 지난달 무역흑자는 74억7000만달러로 역대 최대였지만 한 달간 원 · 달러 환율은 종가 기준으로 19원70전 올랐다.

무역수지와 환율이 반대로 움직이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기업들의 수출실적이 무역수지에 반영되는 시점과 수출대금으로 받은 달러가 외환시장에 공급되는 시점이 다르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수출이 무역수지에 집계되는 시점은 수출품이 세관을 거쳐 외국으로 나갈 때다. 그러나 기업이 환율 하락에 따른 손실을 피하기 위해 장래 받을 수출대금에 대해 선물환 매도 계약을 하면 수출품이 외국으로 나가기에 앞서 외환시장에 달러가 공급된다. 기업으로부터 선물환을 매입한 은행들이 환율 하락시 입을 손실에 대비해 같은 금액의 달러 현물을 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기업이 1년 후에 받기로 한 수출대금을 B은행에 선물환으로 팔면 이를 매입한 B은행은 그만큼의 달러를 차입이나 스와프로 조달해 외환시장에 판다. 2007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국내 기업들의 선물환 순매도액은 1593억달러로 같은 기간 무역흑자 393억달러의 4배에 달했다. 보통 선물환 계약의 만기가 1~3년인 점을 감안하면 올해 집계되는 무역흑자 중 상당 부분은 이미 지난 3년간의 선물환 매도를 통해 환율에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외국인의 국내 주식 투자를 비롯한 자본수지 흐름이다. 무역수지에서 흑자가 나도 자본수지에서 적자가 나면 외환시장에는 달러가 부족해져 환율이 상승한다. 자본수지가 500억8000만달러 순유출이었던 2008년에는 환율이 연중 상승세를 보였고 264억5000만달러 순유입이었던 2009년에는 환율이 하락했다.

자본수지는 올 들어 4월까지는 순유입이었으나 5월에는 119억6000만달러 순유출로 돌아섰다. 유럽 재정위기가 확산되면서 전 세계 주가가 하락하자 국내 주식과 채권에 투자했던 외국인들이 자금을 거둬간 탓이다. 외국인들은 지난주에도 거래소에서 9033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