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뿔을 활용한 화각(畵角) 공예품은 조선시대 왕실과 귀족층에서 소장했던 것 같아요. 주로 왕들의 무덤에서 화각장,화각함,화각 화장대,화각 침선 등이 출토되거든요. 다만 소뿔이어서 부패해 버리기 때문에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

지난달 경기도 분당에 국내 최초로 화각공예 판매전시장(호텔갤러리)을 연 한춘섭씨(62)는 "그나마 남아 있는 화각 유물들도 일본이나 프랑스,미국 쪽으로 넘어가 있는 게 많아 재현 작업이 시급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조선시대에 등장한 화각은 소뿔을 얇게 갈아 각지(角紙)를 만들고 그 위에 오방색과 간색으로 봉황이나 용,모란,십장생 등의 전통 그림과 문양을 그려 붙여 무늬를 만드는 공예 기법이다.

2005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경기 29호 화각장에 지정된 한씨는 "화각 공예품은 재료도 귀하고 공정이 까다로워 여염집에서는 소장하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일반인들도 구입할 수 있게 됐다"며 "앞으로 화각 예술 대중화에 힘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통 문화를 복원하고 외국인들에게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려는 취지에서 전시장을 열었다는 한씨는 1967년부터 화각 작업을 시작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그는 17세 때 우연히 화각 공예에 매료돼 고(故) 음일천 선생의 서울 공방에 들어가 기능을 전수받았다.

"1960년대 말에도 지금처럼 청년 구직자들이 넘쳐났어요. 화각 공예라는 특이한 점이 끌렸지만 당시 '목구멍이 포도청'이었거든요. 소뿔을 삶고 펴고 자르는 일은 물론 돌가루로 안료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소목 짜는 일까지 모든 과정을 배우면서 혼자 다 해야 했어요. "

그는 "하면 할수록 어렵고 까다로웠다"며 "사라져가는 전통 문화를 복원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재현했다"고 말했다. 소뿔은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는 캔버스라 할 수 있다.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웬만한 장롱 하나 장식하려면 400여장의 '작은 캔버스'가 필요하니 황소 200마리가 동원되는 셈이다.

"화각 재료로 2~4년생 한우의 뿔만 사용합니다. 암소뿔은 휘거나 속이 비어 있고 젖소뿔은 투명하지 않거든요. "

그의 솜씨가 알려지면서 청와대에서도 주문이 들어왔다. "청와대가 그동안 여러 차례 국빈용 선물에 쓰려고 제 작품을 구입해 갔어요.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을 비롯해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메르켈 독일 총리 등이 아마 제 작품을 소장하고 있을 겁니다. "

그의 작품은 영화 '미인도' '불꽃처럼 나비처럼'을 비롯해 TV드라마 '이산' '대왕세종'등에서 소품으로 활용됐으며 최근에는 MBC 인기 드라마 '동이'에서 왕실가구로 등장한다. (031)702-821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