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경제, 인플레보다 디플레 위험 크다"
전문가들 잇단 우려 목소리
국제 신용평가업체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데이비스 위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28일 맨해튼 S&P 본사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미국 경제가 당장 디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지난달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핵심물가 상승률이 1%를 밑돈 점에 비춰볼 때 디플레이션 위험이 크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주택 가격 하락으로 가계의 부(wealth)가 감소하고 있는 데다 경색된 차입 여건이 좀체 풀리지 않는 점도 소비 회복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그동안 미국 경기 회복을 이끌어온 경기부양책이 점차 축소되면 수요가 다시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스 이코노미스트는 디플레이션을 막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는 미국 통화당국이 장기 금리를 더욱 낮게 유지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제로 수준인 기준금리를 더 낮출 수 없는 상황에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증권 등을 추가 매입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학계에서도 디플레이션 우려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앤서니 샌더스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최근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디플레이션을 경고하는 징후들이 있다"며 "은행들이 대출을 꺼리는 현상이 이어지면 미국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 회복이 지연될수록 디플레이션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마크 거틀러 뉴욕대 교수도 "미국 경제는 3~4% 내외의 성장과 1~1.5% 정도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로선 인플레이션보다는 디플레이션이 가져올 위험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통화당국도 디플레이션 우려를 염두에 두고 경제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디플레이션이 일단 빚어지면 이를 막기 어려울 뿐 아니라 경제를 심각하게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 일본의 장기 불황도 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 늪에 빠진 결과였다. 디플레이션은 소득 감소로 이어져 가계는 물론 기업과 정부의 빚 상환 부담이 커지게 된다.
뉴욕연방은행에서 시장그룹을 이끌고 있는 브라이언 색 이사는 디플레이션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물가가 지나치게 낮아지는 위험과 함께 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는 점을 동시에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월가 이코노미스트들 역시 인플레이션보다는 디플레이션을 미국 경제가 직면한 위험으로 꼽고 있다. 얀 하지우스 골드만삭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재정과 통화의 확장정책으로 인해 상당수 시장참여자들이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지만 이는 막대한 생산갭을 간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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