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30일 포항제철소에 들어선 당시 이구택 포스코 회장과 정준양 생산기술부문 사장(현 포스코 회장)은 눈시울을 붉혔다. 100여년 역사의 용광로(고로) 공법을 대체하는 파이넥스 상용화 설비를 세계 처음으로 준공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파이넥스 설비 상용화는 박태준 명예회장이 1968년 포항제철을 창립한 후 '제2의 창사'로 여겨질 만큼의 '대사건'으로 평가됐다.

◆'꿈의 제철소' 본격 확대

하지만 파이넥스 설비가 철강업계에서 인정받기까진 우여곡절이 많았다. 2007년 상용화 초기엔 파이넥스 설비 가동이 불안정해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원료를 투입하는 과정에서 유동로에 가루로 된 원료들이 녹지 않은 채 쌓여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쇳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산량 자체를 확대하는 데 제약이 따랐다. 포스코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3년간 파이넥스 공법의 기술 업그레이드에 힘을 쏟아왔다. 분광 형태의 원료가 잘 섞여 녹을 수 있도록 공법을 다듬었다. 설비 증설을 앞둔 포스코가 이번에 조강생산량 확대를 위해 기존 고로 방식이 아닌 파이넥스 설비를 선택한 것도 파이넥스 공법에 대한 자신감을 반영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당시 생산기술부문장으로서 친환경 공법인 파이넥스 상용화를 주도한 공로를 인정받아 금탑산업훈장까지 받았던 정준양 회장의 뚝심도 작용했다. 정 회장은 최근 "이젠 파이넥스 공법으로 본격적인 경쟁을 펼칠 만하다"며 "파이넥스 설비를 한국형 차세대 고로에서 세계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는 설비로 키워내자"고 독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포스코가 200만t급 파이넥스 설비를 추가 도입한다는 것은 파이넥스 공법이 안정화 단계에 진입,생산성 및 경제성에서 기존 고로와 대등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고로 방식은 원료를 덩어리 형태로 뭉치는 사전 가공으로 인한 환경오염과 이에 따른 비용 발생 문제가 지적돼 왔다. 이에 따라 포스코는 1992년부터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가 2007년엔 세계 처음으로 파이넥스 설비를 상용화했다. 파이넥스 공법이란 종전의 용광로 공법과는 달리 철광석과 유연탄을 고로에 직접 넣어 그대로 쇳물을 뽑아내는 기술이다. 지금까지 용광로 공법에서는 반드시 원료를 덩어리로 만드는 소결공장과 코크스공장을 거쳐야 했다. 파이넥스 공법으로 쇳물을 생산하게 되면 기존 제철설비보다 작업공정을 2단계 줄여 경제성을 35% 높이고,제조원가를 15~17%가량 절감할 수 있다. 제철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중국도 반한 파이넥스 공법

포스코는 수년간 중국에서 고로 사업 진출을 위해 공을 들여 왔다. 현지에서 이미 스테인리스 사업을 하고 있지만,고로를 지어야 중국에서 본격적으로 철강사업에 뛰어들 수 있어서다.

한때 중국 현지 철강사 인수도 검토했으나 허사로 끝났다. 중국 정부가 자국의 철강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 철강사가 보유하는 현지 기업 지분을 51% 이상 가질 수 없도록 사실상 규제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태도는 올해 초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포스코의 파이넥스 공법에 관심을 기울이면서부터다. 중국 측은 파이넥스 공법을 적용한 일관제철소를 현지 철강사와 함께 지으면,중국 내 제철사업을 허용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는 올해 초부터 포스코차이나를 통해 중국 정부와 파이넥스 기술을 기반으로 한 합작사업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정 회장은 지난달 원자바오 중국 총리와 만나 "(중국의) 안산강철 등 4개 철강사와 파이넥스 합작사업에 대해 협상을 벌이고 있다"며 "파이넥스는 국가 핵심기술로 지정돼 있어 한 · 중 협력을 위해서는 한국 정부의 승인과 중국 정부의 비준,기술보호에 대한 지지 등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포스코가 국내에서 200만t급 파이넥스 설비를 성공적으로 건설하고 중국과의 합작사업이 성사되면 파이넥스 기술의 세계화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도 일관제철소 건설 사업 등에 파이넥스 공법을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