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조업이 전성기를 맞은 듯 보이지만 최근 주변에서 전개되는 상황은 심상치 않다. 차이완(차이나+타이완)의 부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도 그렇고,일본의 반격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 또한 그렇다.

국내기업 CEO들 중에는 대만기업들이 무섭다고 하는 이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 미국,일본기업과 달리 대만기업과 경쟁해야 한다면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만과 중국 간 경제협력기본협정(ECFA) 체결이 이르면 이달 말로 임박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예사롭게 볼 일이 아니다. 중국과 홍콩,마카오 간 협정과는 그 성격이 다른,이른바 '차이완'의 부상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삼성경제연구소,LG경제연구원 등은 기술이 뛰어난 대만과 생산능력이 탁월한 중국의 시너지 효과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양안의 밀월관계가 중국 정부의 '10대 산업진흥계획' '7대 신흥전략산업 추진' 등과 맞물리면 그 파괴력은 예상보다 클 수 있다면서,우리의 주력 수출품목인 LCD,석유화학 등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기업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중국에 LCD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삼성전자,LG전자는 대만의 부상으로 차질이 빚어질까 전전긍긍하고 있고,석유화학업계는 경쟁력 약화를 걱정하고 있다.

차이완은 세계시장에서도 변수가 될 수 있다. 한국의 대기업 군단을 부러워하던 대만이 중국을 업고 규모의 경제를 활용하고 나오거나,중국이 대만과의 연구개발 협력을 통해 우리와의 기술격차를 급속히 좁히는 경우가 그렇다. 두 시나리오 모두 우리로서는 상당한 부담이다.

일본의 반격도 걱정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어느 정도 마무리한 일본기업들은 중국 인도 등 신흥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섰고,자동차 등 우리의 안방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 가운데 일본 정부는 환경 · 에너지,건강(의료 · 간호),아시아 경제,관광 · 지역활성화,과학기술 입국,고용 · 인재 등을 중심으로 한 '신성장전략'을 이달 말 발표할 예정이다. 디플레 우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경제에 새로운 성장의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얘기다.

여기서 아시아 경제 분야는 일본의 적극적인 아시아 공략 의지를 담고 있고,그 중에서도 이 지역의 철도 · 수도 · 전력 등 인프라 수요를 겨냥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환경 · 에너지,건강,관광 등은 내수와 수출확대를 동시에 노린 것이고,과학기술 입국,고용 · 인재는 일본 제조업의 강점을 지키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일본이 자동차 산업에서 하이브리드카를 선도했듯 첨단기술과 조합된 새로운 분야를 개발하는 소위 '탈(脫)성숙형 혁신'이 강조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대부분 우리의 신성장전략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일본의 신성장전략을 주시해야 할 이유는 또 있다. 그동안 국내기업들이 누렸던 '엔고'라는 반사이익을 앞으로는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다. 간 나오토 일본 신임총리가 신성장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라도 엔고라는 불리한 상황이 지속되는 것을 방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의 정보기술(IT) 산업을 보면 소프트파워를 앞세운 미국의 공세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하드웨어에서는 차이완으로부터 공격당할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일본의 반격이 본격화된다면 상황은 더욱 어려울지 모른다. IT 외 다른 산업들도 이렇게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안현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