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배 아모레퍼시픽 사장(47 · 사진)은 '황제의 축배'를 대전에서 들었다. 15일 오후 3시 주식거래가 종료되고 아모레퍼시픽 주가가 100만2000원을 기록한 바로 그 시점에 서 사장은 대전에 있는 아모레퍼시픽 매장들을 훑고 있었다.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는 생각에 1년 중 3분의 1을 지방과 해외에서 보내는 서 사장.이날도 어김없이 고객들을 직접 만나 아모레퍼시픽의 부족한 점과 고쳐야 할 점을 '한 수' 배웠다.

1993년 30세의 나이에 태평양 기획조정실 사장을 맡은 이후 과감한 구조조정과 끊임없는 변신을 주도한 것이 오늘날 국내 화장품 시장의 35.7%를 장악하는 '화장품 업계의 삼성전자'를 일군 비결로 꼽힌다.

◆"고급 브랜드로 승부하라"

서 사장이 기획조정실 사장으로 취임한 뒤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본업에 집중하자'는 것이었다. 태평양패션,태평양생명,태평양증권 등 경쟁력이 떨어지는 24개 계열사를 정리한 서 사장은 화장품 사업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그리곤 샤넬, 랑콤, 에스티로더 등 글로벌 화장품 업체에 맞설 만한 고급 국산 브랜드 개발에 착수한다.

이렇게 해서 나온 브랜드가 '헤라'(1995년)와 '설화수'(1997년)다. 국내 '한방화장품'시장을 개척한 설화수는 지난해 5000억원 넘게 판매됐다. 국내에서 단일 화장품 브랜드 가운데 5000억원이 넘는 것은 설화수가 유일하다.

회사 관계자는 "1990년대 중반 개별 브랜드를 중심으로 가치를 키워나가는 '브랜드 컴퍼니' 전략을 채택하게 된 건 서 사장의 아이디어였다"며 "덕분에 서로 다른 취향의 고객을 다양하게 확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모레는 현재 설화수,비비프로그램,헤라,아이오페,라네즈,마몽드,미쟝센 등 연간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메가 브랜드'를 7개나 보유하고 있다.


◆'아모레 카운슬러'의 힘 가세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화장품이나 피어리스(현 스킨푸드)와 비슷한 규모였던 아모레퍼시픽이 2위 그룹을 멀찌감치 따돌릴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3만7000명에 달하는 방문판매 조직을 빼놓을 수 없다. '아모레 카운슬러'들이 책임지는 매출 비중이 전체의 37%에 달하기 때문이다.

아모레 관계자는 "1990년대 들어 경쟁업체들이 백화점 및 브랜드숍 영업을 강화하기 위해 방문판매 조직을 축소했지만 서 사장은 오히려 방판 조직을 키웠다"며 "그 때의 판단이 오늘날 화장품 업계의 운명을 가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방판 조직은 아모레의 성장을 이끈 또다른 일등공신이었다. 보통 신규 브랜드나 신제품이 나오면 인지도를 얻기 위한 광고 · 홍보 기간이 필요하지만,아모레는 '입소문 마케팅' 능력을 갖춘 방판 조직이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 2002년 '뷰티푸드'라는 신개념의 건강보조식품 '비비프로그램'을 내놨을 때도 처음엔 매출이 주춤했지만,카운슬러들을 통해 '선체험 · 구매'로 이어지면서 연간1000억원대의 매출을 일구는 메가 브랜드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한국은 좁다…세계를 품어라

한국시장의 성공에만 안주하지 않고 글로벌 시장을 공략한 것도 아모레의 성공비결 가운데 하나다. 서 사장이 세계시장 공략에 나선 시점은 2000년대 초.20대 초중반 타깃의 '라네즈'를 앞세워 2002년 홍콩 소고백화점에 입점했으며, '한류바람'을 틈타 중국시장에 파고들어 현재 172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시장에선 '아모레퍼시픽'으로 뉴욕 버그도프굿맨 등 고급백화점에 입점해 프레스티지 시장을 공략중이며,최근에는 '설화수'로 중국과 미국 시장 문을 두드리고 있다. 프랑스에는 향수 '롤리타 렘피카'가 진출해 있다. 지난해 해외 매출은 2830억원으로,한 해 전보다 21% 성장했다.

서 사장은 2006년 6월 지주회사 체제로 바꾼 이후에도 지주회사인 태평양과 주력 계열사인 아모레퍼시픽의 대표이사를 맡아 경영현안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는'2015년까지 10개의 메가 브랜드를 육성해 세계 10대 화장품 회사(현재 19위)로 성장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해놓고 있다. 이에 대해 윤효진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내수시장 소비회복에 따라 백화점,아리따움,마트 등에서 골고루 연 15%의 성장세를 보이는 데다 하반기 중국내 설화수 진출과 방판 채널 진입 등을 앞두고 있어 안팎에서 순조로운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안상미/오상헌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