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쉬운 것만 하는 증권사 I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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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왕십리뉴타운 쪽으로는 눈길도 주기 싫습니다. "
한 증권사의 IB(투자은행) 담당 임원은 15일 기자에게 하소연했다. 왕십리 근처에는 증권사 지점이 거의 없는데 IB 담당자가 무슨 곤욕을 치렀을까.
사정은 이랬다. 서울 성동구 왕십리뉴타운 2지구 재개발사업과 관련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문제였다. 시공을 맡은 대형 건설사들에 돈을 빌려주던 국민은행이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작년 초 추가 PF를 중단했다. 증권사 IB 담당자들이 이 틈을 타 앞다퉈 건설사에'러브콜'을 보냈다.
하지만 건설사들은 이를 외면하다 작년 말 다른 시중은행의 PF 자금을 빌려 썼다. 이달 내 집행 예정인 조합원 이주비 관련 PF에도 증권사들은 참여하지 못했다. 한 건설사 재무 담당자는 "작년 초부터 약 20개 증권사가 PF 대출과 관련해 접촉을 해왔지만, 은행의 PF 대출 금리도 연초 대비 2%포인트나 떨어졌는데 굳이 비싼 증권사 자금을 쓸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럼에도 증권사들은 대형 건설사 PF에 목을 매야 하는 상황이다. A증권사 IB 담당 임원은 "수익을 낼 만한 곳이 마땅치 않은 데다 중견 건설사 PF는 리스크가 있어 은행에 밀릴 게 뻔한데도 대다수 증권사들이 대형 건설사 PF로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수요는 없는데 공급이 몰려 수수료 덤핑 경쟁까지 벌어진다. 작년만 해도 A등급 이상 회사채의 경우 증권사가 챙기는 수수료는 발행액의 0.3% 정도였지만 지금은 0.1~0.2%까지 내려갔다. 대형 B증권 임원은 "중소형 증권사들이 수수료를 후려쳐 남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 반면 중소형 C증권 관계자는 "수수료 덤핑은 점유율을 유지하려는 대형 증권사들이 주도한다"고 반박했다.
IB를 지향한다는 증권사들이 위험이 적은 투자 대상만 찾다 보니 IB 고유 영역인 기업 인수 · 합병(M&A) 자문이나 자기자본 투자(PI)는 급감하고 있다. 대형 D증권의 경우 올해 신규 PI 집행액이 2007년 대비 고작 3%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이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도 골드만삭스와 같은 글로벌 IB를 육성해야 한다"던 증권업계의 외침은 이젠 메아리조차 남아 있지 않다.
노경목 증권부 기자 autonomy@hankyung.com
한 증권사의 IB(투자은행) 담당 임원은 15일 기자에게 하소연했다. 왕십리 근처에는 증권사 지점이 거의 없는데 IB 담당자가 무슨 곤욕을 치렀을까.
사정은 이랬다. 서울 성동구 왕십리뉴타운 2지구 재개발사업과 관련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문제였다. 시공을 맡은 대형 건설사들에 돈을 빌려주던 국민은행이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작년 초 추가 PF를 중단했다. 증권사 IB 담당자들이 이 틈을 타 앞다퉈 건설사에'러브콜'을 보냈다.
하지만 건설사들은 이를 외면하다 작년 말 다른 시중은행의 PF 자금을 빌려 썼다. 이달 내 집행 예정인 조합원 이주비 관련 PF에도 증권사들은 참여하지 못했다. 한 건설사 재무 담당자는 "작년 초부터 약 20개 증권사가 PF 대출과 관련해 접촉을 해왔지만, 은행의 PF 대출 금리도 연초 대비 2%포인트나 떨어졌는데 굳이 비싼 증권사 자금을 쓸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럼에도 증권사들은 대형 건설사 PF에 목을 매야 하는 상황이다. A증권사 IB 담당 임원은 "수익을 낼 만한 곳이 마땅치 않은 데다 중견 건설사 PF는 리스크가 있어 은행에 밀릴 게 뻔한데도 대다수 증권사들이 대형 건설사 PF로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수요는 없는데 공급이 몰려 수수료 덤핑 경쟁까지 벌어진다. 작년만 해도 A등급 이상 회사채의 경우 증권사가 챙기는 수수료는 발행액의 0.3% 정도였지만 지금은 0.1~0.2%까지 내려갔다. 대형 B증권 임원은 "중소형 증권사들이 수수료를 후려쳐 남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 반면 중소형 C증권 관계자는 "수수료 덤핑은 점유율을 유지하려는 대형 증권사들이 주도한다"고 반박했다.
IB를 지향한다는 증권사들이 위험이 적은 투자 대상만 찾다 보니 IB 고유 영역인 기업 인수 · 합병(M&A) 자문이나 자기자본 투자(PI)는 급감하고 있다. 대형 D증권의 경우 올해 신규 PI 집행액이 2007년 대비 고작 3%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이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도 골드만삭스와 같은 글로벌 IB를 육성해야 한다"던 증권업계의 외침은 이젠 메아리조차 남아 있지 않다.
노경목 증권부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