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백악관 브리핑룸.사상 최악의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고와 관련한 미국 정부의 대응이 핫이슈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대응을 하고 있지 않느냐"고 한 기자가 물고 늘어졌다.

로버트 기브스 대변인은 신경질적이었다. "펄쩍 펄쩍 뛰고 고함을 지르고,책상을 꽝꽝 내려친다고 원유가 유출되는 구멍이 막아진다면 사고 첫날 진작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역공했다. "사고지역 주민들과 국민들은 사고 유정의 유출구를 막았다는 본질적인 결과를 바라고 있고,대통령은 그런 결과에 대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기브스 대변인의 말은 백번 옳았으나 이후 전개되고 있는 양상은 달랐다. "빌어먹을 구멍을 당장 막아버려","(사고를 낸 BP 경영진의) 엉덩이를 걷어차야 한다"며 오바마 대통령은 격한 감정을 입에 담아 쏟아냈다. 14일에는 기름오염 피해현장을 찾아 방제작업을 점검했다. 사고가 발생한 이후 네 번째다. 15일에는 사고수습에 대한 대국민 연설도 할 예정이다.

기브스 대변인은 전에 없이 요란을 떨었다. 피해현장의 총지휘자인 테드 앨런 미 해안경비대장을 백악관 브리핑룸으로 불러올려 질의응답 시간을 마련했다. 데이비드 액설로드 백악관 선임 정치고문은 "대국민 커뮤니케이션이 잘못됐다"고 털어놨다.

가깝게는 오는 11월 의회 중간선거가,조금 더 멀게는 2012년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다. 여당인 민주당의 의석과 오바마 대통령의 연임 여부가 걸린 선거다. 백악관과 오바마 대통령의 속보이는 정치 행위가 늑장대응했다는 미국민들의 분노를 완전히 해소했는지는 선거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대국민 소통과 설득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한 뒤 이를 개선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정치적인 소통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여당이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주된 요인 중 하나로 대국민 소통의 실패가 꼽힌다. 세종시와 4대강 문제를 둘러싼 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이 자초했다는 분석이다.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소통 부족과 설득력 부족을 인정하고 쇄신을 선언했지만 만시지탄이다. 이 대통령은 "정부의 소통과 설득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며 "더 많이 토론하고,더 많은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심각한 소통 위기를 모르고 있었는지,아니면 아예 불통을 개선할 의지가 없었는지는 이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이 자문해볼 일이다.

요즈음 각광받고 있는 최고경영자(CEO)는 단연 애플의 스티브 잡스다. 잡스에게는 독불장군,고집불통 등 수많은 수식어가 붙지만 혁신제품을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내놓겠다는 집념에서만큼은 불통과는 거리가 멀다. 잡스는 사내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구하기 위해 개발팀으로부터 직보를 받아 반영하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애플의 글로벌 히트작인 아이폰이 채택하면서 선풍을 일으킨 앱스토어(사용자들이 개발해 올리는 응용 소프트웨어 시장)는 소비자들 사이의 사회적인 소통 네트워크를 상품화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나 이 대통령은 미국과 한국이라는 정치 주식회사의 CEO다. 정부 정책이라는 상품은 소비자인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는 소통을 통해 제시돼야 판매로 연결된다. 무형인 소통의 가치조차 비즈니스 모델화한 잡스의 창의로운 리더십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워싱턴=김홍열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