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평생 안해본 연기 없어…이번엔 불량학생 역할이죠"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고희기념 연극 '그대를 속일지라도'의 이호재씨
"48년간 연극배우로 살았으니 하고 싶은 배역이 이제는 없어요. 누군가 했던 캐릭터는 싫고 새로운 역을 해야죠."
1963년 존 스타인벡의 '생쥐와 인간'(국립극장)에서 레니 스몰 역으로 연기인생을 시작한 원로 배우 이호재씨.올해 칠순인 그를 위해 동료 · 후배 연극인들이 헌정작 '그대를 속일지라도'(이만희 작 · 안경모 연출)를 기획했다. 18일 개막을 앞두고 지난 9일 저녁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근처에서 이씨를 만났다.
반평생 연극무대에 선 소회를 물었다. "돌아볼 일이 뭐 있나. 돌아보면 길고 앞을 보면 짧은데,후회할 일 말아야죠.남자배우가 할 수 있는 역은 다 해봤어요. 앞으로는 남들이 안 했던 역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남과 비교되기 싫어서.내가 좀 더 잘 한들 뭣하고…. 행여 못하면 자존심 상하잖아요. "
이씨가 그동안 참여한 연극은 158편.셰익스피어,안톤 체호프,아서 밀러 등 외국 유명 극작가들의 고전부터 유치진 · 오태석 · 이해랑 · 이만희 등 국내 작품까지 다 섭렵했다. 한국연극영화예술상 · 동아연극상 · 백상예술상 · 배우협회연기상 등 거의 모든 연극상도 석권했다.
이씨가 고희를 맞아 이번에는 교복 차림의 고등학생으로 돌아왔다. 극단 컬티즌의 '그대를 속일지라도'에서 동풍고 날라리 패거리인 '사천왕'의 보스 이진백 역을 맡은 것.전무송 · 윤소정 · 권병길 · 김재건 · 지자혜 · 이재희 등 내로라하는 중견 연극배우들이 함께 무대에 섰다. 김철리 · 이성열 · 강대홍 · 최용훈 등 연출가들도 카메오로 출연한다.
이 작품은 1960년대 한 고등학교 문제아들로 구성된 밴드 멤버들의 학창시절을 그리고 있다. 성적은 전교 꼴찌,동급생에게 양말을 강매하며 '삥'을 뜯는 네 명의 남학생은 선생님이 아무리 매를 때려도 절 입구에서 선 사천왕처럼 떡 버틴다고 해서 '사천왕'이라 불린다. 어느날 수진여고 문예반 2학년 여학생들('전설의 4인방')을 꼬드기면서 거짓말로 점철된 연애가 시작된다. 결국 같은 밴드에서 활동하는 '의정부 백바지 클럽'(불량 여학생 모임) 여자애들의 질투심으로 한판 난리가 벌어진다.
"쎈타 까" "눈에 후까시 풀어" "담탱이" 등 고전적인 불량학생들의 대사,'문학의 밤'과 같은 추억의 행사는 1950~1960년대의 향수를 자아낸다.
이씨는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는 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이상하게 교복만 입으면 말투와 행동이 자연스럽게 어려지는 게 재미있다"고 했다. 고교 때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약했다는 그의 학창 시절은 어땠을까.
"공부를 못해서 악몽같았어요. 이번 연극도 학교라는 제도 안이 아니라 밖에서 노는 불량한 애들 얘기잖아요. 대사 중에 '소년은 꿈꾸고 노인은 회상한다'는 멕시코 속담이 나와요. 늙어서 후회할 일 하지 말고 현실을 충실히 살아가자는 거죠."
이번에는 '배우'가 무엇인지 물었다. 답변이 빗나간다. "배우? 별게 아니라니깐.누구나 다 해요. 난 재주가 없어서 평생 한 거지.다만 선천적인 배우와 후천적으로 노력하는 배우가 있지요. 타고난 동시에 노력하고,노력하면서 타고난 장점을 찾는 것이 배우의 소양이고…."
그는 영화와 TV드라마에도 출연했지만 연극 무대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텔레비전이나 영화와는 달라요. 연극 배우만이 아는 희열이 있어요. 연출가도 그 느낌은 모를 겁니다. 상상만 하겠죠.관객과 같이 숨쉬고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느낌이 있어요. "
짧은 시간에 상업적으로 급성장한 뮤지컬과 달리 제자리에 머무는 듯한 연극계의 현실도 비교적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좋게 해석하면 그만큼 정통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죠.연극은 발전이 없어요. 척도가 돈이라면 그렇잖아요. 상대적인 빈곤감은 더 커지죠.그래도 우리 몸에서 나오는 소리와 몸짓으로 계속 새 작품을 해나가는 겁니다. "
월드컵(축구)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원수같다"며 웃었다. 당초 첫 공연 예정일(17일)이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경기와 겹쳐 하루 연기했다는 것.2002년 한 · 일 월드컵 때에도 그는 공연 중이었다. "대학로에 대형 스크린이 걸리고 거리 응원을 해서 혹시 관객들이 오시기 불편할까봐 그래요. 이기면 좋긴 하죠."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
1963년 존 스타인벡의 '생쥐와 인간'(국립극장)에서 레니 스몰 역으로 연기인생을 시작한 원로 배우 이호재씨.올해 칠순인 그를 위해 동료 · 후배 연극인들이 헌정작 '그대를 속일지라도'(이만희 작 · 안경모 연출)를 기획했다. 18일 개막을 앞두고 지난 9일 저녁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근처에서 이씨를 만났다.
반평생 연극무대에 선 소회를 물었다. "돌아볼 일이 뭐 있나. 돌아보면 길고 앞을 보면 짧은데,후회할 일 말아야죠.남자배우가 할 수 있는 역은 다 해봤어요. 앞으로는 남들이 안 했던 역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남과 비교되기 싫어서.내가 좀 더 잘 한들 뭣하고…. 행여 못하면 자존심 상하잖아요. "
이씨가 그동안 참여한 연극은 158편.셰익스피어,안톤 체호프,아서 밀러 등 외국 유명 극작가들의 고전부터 유치진 · 오태석 · 이해랑 · 이만희 등 국내 작품까지 다 섭렵했다. 한국연극영화예술상 · 동아연극상 · 백상예술상 · 배우협회연기상 등 거의 모든 연극상도 석권했다.
이씨가 고희를 맞아 이번에는 교복 차림의 고등학생으로 돌아왔다. 극단 컬티즌의 '그대를 속일지라도'에서 동풍고 날라리 패거리인 '사천왕'의 보스 이진백 역을 맡은 것.전무송 · 윤소정 · 권병길 · 김재건 · 지자혜 · 이재희 등 내로라하는 중견 연극배우들이 함께 무대에 섰다. 김철리 · 이성열 · 강대홍 · 최용훈 등 연출가들도 카메오로 출연한다.
이 작품은 1960년대 한 고등학교 문제아들로 구성된 밴드 멤버들의 학창시절을 그리고 있다. 성적은 전교 꼴찌,동급생에게 양말을 강매하며 '삥'을 뜯는 네 명의 남학생은 선생님이 아무리 매를 때려도 절 입구에서 선 사천왕처럼 떡 버틴다고 해서 '사천왕'이라 불린다. 어느날 수진여고 문예반 2학년 여학생들('전설의 4인방')을 꼬드기면서 거짓말로 점철된 연애가 시작된다. 결국 같은 밴드에서 활동하는 '의정부 백바지 클럽'(불량 여학생 모임) 여자애들의 질투심으로 한판 난리가 벌어진다.
"쎈타 까" "눈에 후까시 풀어" "담탱이" 등 고전적인 불량학생들의 대사,'문학의 밤'과 같은 추억의 행사는 1950~1960년대의 향수를 자아낸다.
이씨는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는 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이상하게 교복만 입으면 말투와 행동이 자연스럽게 어려지는 게 재미있다"고 했다. 고교 때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약했다는 그의 학창 시절은 어땠을까.
"공부를 못해서 악몽같았어요. 이번 연극도 학교라는 제도 안이 아니라 밖에서 노는 불량한 애들 얘기잖아요. 대사 중에 '소년은 꿈꾸고 노인은 회상한다'는 멕시코 속담이 나와요. 늙어서 후회할 일 하지 말고 현실을 충실히 살아가자는 거죠."
이번에는 '배우'가 무엇인지 물었다. 답변이 빗나간다. "배우? 별게 아니라니깐.누구나 다 해요. 난 재주가 없어서 평생 한 거지.다만 선천적인 배우와 후천적으로 노력하는 배우가 있지요. 타고난 동시에 노력하고,노력하면서 타고난 장점을 찾는 것이 배우의 소양이고…."
그는 영화와 TV드라마에도 출연했지만 연극 무대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텔레비전이나 영화와는 달라요. 연극 배우만이 아는 희열이 있어요. 연출가도 그 느낌은 모를 겁니다. 상상만 하겠죠.관객과 같이 숨쉬고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느낌이 있어요. "
짧은 시간에 상업적으로 급성장한 뮤지컬과 달리 제자리에 머무는 듯한 연극계의 현실도 비교적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좋게 해석하면 그만큼 정통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죠.연극은 발전이 없어요. 척도가 돈이라면 그렇잖아요. 상대적인 빈곤감은 더 커지죠.그래도 우리 몸에서 나오는 소리와 몸짓으로 계속 새 작품을 해나가는 겁니다. "
월드컵(축구)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원수같다"며 웃었다. 당초 첫 공연 예정일(17일)이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경기와 겹쳐 하루 연기했다는 것.2002년 한 · 일 월드컵 때에도 그는 공연 중이었다. "대학로에 대형 스크린이 걸리고 거리 응원을 해서 혹시 관객들이 오시기 불편할까봐 그래요. 이기면 좋긴 하죠."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