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 기아자동차 최고 경영진을 비롯한 임원들이 잇따라 글로벌 경영일선에 나선다. 임원들이 한국에 머무르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해외 생산,판매 현장을 적극적으로 챙기라는 '특명'이 떨어졌다는 게 그룹 측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변화하고 있는 글로벌 시장 동향과 경쟁업체들의 마케팅 및 신차 개발전략 등을 경영진이 발로 뛰며 파악하고 미리 대응하자는 취지"라고 전했다. 양승석 현대차 사장은 남아공 요하네스버스를 방문,월드컵 마케팅을 챙기고 있다. 다른 부회장,사장급들도 금명간 주요 해외 전략 시장을 찾을 예정이다.

◆현대 · 기아차그룹의 '주마가편'

그룹 안팎에서는 이례적으로 임원들이 해외 현장에 일제히 투입되는 것을 '주마가편(走馬加鞭)'으로 해석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았을 때 더욱 적극적으로 확장경영을 펼쳐야 한다는 뜻이다. 올 들어 조금씩 악화되고 있는 시장 상황을 적극적으로 타개해야 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현대 · 기아차그룹은 글로벌 경제위기로 주요 자동차 메이커들이 잔뜩 움츠러들었던 지난해 공격적 마케팅에 힘입어 시장지배력을 크게 높였다. 지난해 1분기 99만2000대였던 현대 · 기아차의 자동차 판매량은 4분기 138만5000대로 대폭 확대됐다. 같은 기간 세계 시장 점유율도 7.0%에서 8.6%로 높아졌다.

하지만 올 들어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 현대 · 기아차의 지난 5월 미국 시장 점유율은 7.3%로 전달보다 0.1%포인트 하락했다. 글로벌 시장 전체를 살펴보면 하락세가 더 뚜렷하다. 지난해 1분기 현대 · 기아차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7.4%로 전 분기보다 1.2%포인트 떨어졌다. 판매량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대대적인 할인 공세를 앞세운 경쟁업체들의 성과가 더 높아 점유율이 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경기침체기 이후 호황을 이어가던 세계 자동차 시장이 유럽발 재정위기와 원자재 가격 상승,세계 경기 회복세 둔화 등으로 하반기부터 한풀 꺾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정몽구 회장의 현장경영 DNA

업계 일각에서는 정몽구 회장이 1999년 취임 후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품질경영'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품질과 제품력이 안정 궤도에 오른 만큼 시장확대를 위한 새로운 전략을 가다듬고 있다는 관측이다.

정 회장의 '현장경영 DNA'가 경영진으로 전파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진 일관제철소 건설 과정을 보면 정 회장이 얼마나 현장을 중시하는지를 알 수 있다. 정 회장은 당진 제철소 준공식 전 일주일에 2~3번 건설현장을 방문,사업의 진척 상황을 직접 챙겼다. 준공식 이후에도 매주 한 번씩 거르지 않고 당진을 찾고 있다. 해외 현장 방문 횟수도 잦은 편이다. 지난 4월에는 기아차 중국 옌청 공장을 방문했다. 중국 상하이엑스포 개막식에 참여해야 하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공장을 방문,현지 임직원들에게 "연초 세운 중국 내 100만대 판매 목표를 달성할 것"을 강조했다.

현대차 그룹의 요즘 분위기는 경제위기 때 못지않다. 정 회장은 직원들이 쉬는 토요일에도 꼬박꼬박 출근해 주요 경영지표들을 일일이 들여다보고 있다. 임원들도 이전보다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고 있다. 한 임원은 "보고자료와 회의를 준비하느라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