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디아은행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지점이 많아 아주 편리합니다. 일처리도 빠르고 서비스도 좋아 핀란드는 물론이고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노르딕 국가에 사는 사람치고 노디아은행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겁니다. "

지난 4일 핀란드 헬싱키 시내 중심가인 알렉산테링카투 거리에 있는 노디아 핀란드 본사 영업점.핀란드 전통 지갑들이 전시된 고객 대기석에서 만난 알렉시 코르호넨씨(42)는 노디아은행을 칭찬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북유럽 최대은행답게 서비스와 상품의 다양성면에서 노르딕 사람들의 자부심이 됐다"고 말했다.

노디아은행은 작년 한 해 동안 23억1800만유로(약 3조4200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작년 말 총자산은 5075억유로(약 749조원)로 북유럽 최대다. 핀란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에 1357개의 영업점, 종업원 3만3347명,고객 1000만명을 보유하고 있다. 노르딕사람들의 자랑거리일 만하다.

◆공적자금 투입과 민영화

노디아은행의 탄생 기원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 북유럽 3국은 1990년대 초 금융위기로 휘청거렸다. 은행들은 동반 부실화됐다. 1980년대 추진된 금융 · 외환 자유화와 그에 따른 대출 증가,자산가격 급등,자산거품 붕괴 등이 원인이었다. 각국 정부는 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해 국유화하는 방법으로 금융위기를 돌파했다. 마치 우리나라의 1997년 외환위기 때처럼 말이다.

스웨덴 정부는 당시 노드방켄과 고타뱅크를 100%국유화한 뒤 1993년 두 은행을 합병했다. 이렇게 탄생한 '노드방켄'이 노디아은행의 뿌리다. 이후 노디아은행의 역사는 민영화의 역사다. 은행경영이 정상을 되찾아가자 스웨덴정부는 노드방켄의 지분 34.5%를 기업공개(IPO)를 통해 시장에 매각했다. 공적자금을 투입한 지 3년 만인 1995년이었다. 이듬해인 1996년에는 6%의 주식을 자사주로 사들여 소각했다. 정부지분율은 59.4%로 낮아졌다. 당시 금지돼 있던 자사주 매입에 대해 예외를 인정해 주면서까지 정부 지분을 낮췄다.

이후엔 국경을 초월한 인수합병(M&A)을 통해 정부지분을 줄여갔다. 1997년엔 핀란드 메리타 은행과,2000년엔 덴마크 유니단마크와 합쳤다. 스웨덴 정부의 지분율은 19.9%로 낮아졌다. 2000년엔 노르웨이의 크리스티아니아뱅크를 인수,이름을 노디아 은행으로 바꾼 뒤 북유럽 최대은행으로 도약했다.



◆경영불간섭과 다양한 M&A

노디아은행이 이처럼 민영화와 대형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론 '빠른 민영화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우선 꼽힌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당시부터 민영화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한 뒤 실현가능한 방법을 통해 정부 지분을 줄여갔다"는 게 은행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IPO와 자사주 매입,M&A 등의 방법이 동원됐다.

공적자금 회수를 최대화하기 위해선 경영실적이 좋아야만 한다. 스웨덴 정부는 이를 위해 처음부터 경영불개입 원칙을 지켜왔다. 경영진에 정부 사람을 파견하지도 않았다. 경영목표를 준 뒤 이를 못 지킬 경우 인원이나 예산을 통제하지도 않았다. 일정 기간 경영성과를 평가한 뒤 경영진의 책임을 물은 게 전부였다. 스웨덴 정부는 아직도 노디아은행의 지분 19.9%를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후보추천위원회 위원 1인 지명권을 갖고 있는 것 말고는 경영에 전혀 간섭하지 않고 있다.

유카 뉴오티오 노디아은행 부행장은 "정부가 거의 전권을 경영진에게 준 뒤 실적에 따라 책임만 물어온 것이 노디아은행 경쟁력의 원천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지속적으로 정부지분을 줄여나가다보니 M&A도 쉽게 성사됐다"며 "북유럽 전체적으로 크고 강한 은행을 갖게 됐고 스웨덴 정부 등은 공적자금을 원활히 회수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헬싱키(핀란드)=정재형 기자 jjh@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