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이 계열 보험사를 통해 증권계좌를 개설하는 서비스가 위법논란에 휩싸이며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금융위원회가 보험사의 증권계좌 개설을 위한 실명확인 대행 과정에 금융실명법 위반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냈기 때문.증권 · 보험사들은 이미 길게는 3년 넘게 해오던 서비스이고,은행을 통한 증권계좌 개설은 가능한데 보험사만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반발하고 있다.

◆"보험사 계좌개설은 실명법 위반"

금융위원회 은행과 관계자는 8일 "보험사들이 증권사와 업무 위탁계약을 맺고 증권계좌를 개설해 주는 서비스가 실명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관련 규정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며 "지난달 증권사 담당 임직원을 불러 실태조사를 마쳤으며 내부 조율을 거쳐 조만간 결론을 낼 방침"이라고 밝혔다.

금융위 보험과 관계자도 "최근 몇몇 보험사가 증권계좌 개설을 '부수업무'로 하겠다는 의사를 타진해 왔지만 은행과에서 부정적인 검토의견을 전해와 최종 입장이 정리될 때까지 인가를 보류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미래에셋증권이 3년여 전 미래에셋생명과 제휴해 첫선을 보인 이래 삼성 · 한화 · 동양종금증권 등이 가세한 증권계좌 개설 위탁업무가 위법시비에 휘말리게 됐다.

현재 보험사들은 영업 창구에서 실명확인을 한 뒤 제휴 증권사 계좌를 만들어 주거나,증권사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가입할 수 있도록 실명확인을 대행해 주고 있다. 자본시장법에서 증권계좌 개설을 '위탁이 가능한 업무'로 명시해 증권사들은 업무개시 일주일 전까지 금융감독원에 신고만 하면 된다.

하지만 금융위는 자본시장법 규정과 관계없이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법)'에 저촉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과 관계자는 "증권사의 중요 업무인 계좌 개설을 위탁을 통해 대행시키는 것은 실명제법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입장을 증권사들에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은행은 가상의 모(母)계좌에 증권사 자(子)계좌를 연결하는 방식이어서 실명법 상 문제가 없다"며 "보험사는 자체 계좌가 없는 데다 가입 시 실명확인 절차도 안거친다"고 지적했다.

◆1000억원대 수수료 둘러싼 힘겨루기

금융위가 최종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지만 시장에선 이미 혼선을 겪고 있다. 동부증권과 메리츠종금증권은 계열 보험사에 증권계좌 개설을 위탁하려던 계획을 중단했다. 미래에셋 · 삼성 · 한화 · 동양종금증권 등 기존 업무위탁 증권사들도 위법소지가 있다는 금융위 해석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증권사들은 금융투자협회를 통해 업계 의견을 모은 뒤 업무위탁이 계속돼야 한다는 입장을 금융위에 전달할 방침이다.

보험권도 혼란에 빠졌다. 증권사들이 금감원에 계좌개설 대행을 위한 업무위탁 신고를 한 것과 달리 보험사들은 한 곳도 사전 신고를 안 해 위법논란을 키우고 있다. 금융위 보험과 관계자는 "보험사가 증권계좌 개설 시 '부수업무' 신고의무가 면제되는지가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수년 동안 탈없이 해오던 서비스가 갑작스레 이슈로 부상한 데는 금융권역별 기싸움이 깔려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보험사 부수업무 허용문제로 '전선'이 형성된 것은 은행과 증권사 간 본격적인 힘겨루기를 앞둔 전초전 성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은행은 증권계좌를 개설해 주는 대가로 연 1000억원대의 수수료 수입을 챙긴다"며 "증권사들이 거액을 내고 지급결제망에 가입한 것을 계기로 은행 가상계좌를 이용하지 않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과 연계된 논란"이라고 설명했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