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이후 100포인트 이상 반등하며 힘을 냈던 코스피지수가 7일 헝가리 충격으로 다시 급락했다. 지난 주말(4일) 미국 다우지수가 심리적 지지선인 10,000선 밑으로 떨어진 여파가 국내 증시를 흔들었다. 외국인이 사흘 만에 매도 우위로 돌아서자 초여름 '반짝 랠리'도 한풀 꺾였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의 불안감이 높아진 상황에서도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은 그다지 당황하지 않는 표정이다. 이날 외국인의 순매도 규모는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 증시 전문가들은 외국인이 한국 기업의 이익 전망을 고려할 때 현 주가 수준에서 가격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지수 하단은 견고한 반면 해외 변수에 의해 출렁이는 장세는 이어질 전망이어서 당분간 관망할 필요가 있다는 신중론이 우세하다.

◆우량주 '저가 사냥'에 나선 외국인

이날 코스피지수는 26.16포인트(1.57%) 떨어진 1637.97로 마감했다. 주말 뉴욕증시가 3% 이상 폭락한 여파로 하락 출발한 코스피지수는 오전 장에서 낙폭이 45포인트까지 확대됐다. 하지만 오후 들어 기관의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고 대형주를 중심으로 프로그램 매수가 늘어 하락폭이 줄었다. 지난 3일 되찾았던 200일 평균선(1647)은 이틀 만에 반납했다.

최근 이틀간 매수 우위를 보였던 외국인은 2657억원을 순매도하며 일단 몸을 사리는 모습이었다. 미국 고용지표 부진,헝가리 재정위기 등 해외발 악재 탓이다. 하지만 지난 주말 미국 · 유럽 증시 폭락세를 감안하면 이날 매도 규모는 크지 않았다는 평가다. 외국인은 지난달 14일부터 9일간 하루 평균 4000억원씩 순매도했지만 이달 들어선 매도세가 한결 누그러졌다.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들은 대외 변수에 따라 시장이 출렁이긴 하지만 외국인의 투자심리는 안정되는 분위기라고 평가했다. 김경덕 메릴린치 전무는 "(외국인) 고객들이 헝가리는 경제 규모나 파급효과 측면에서 그리스와는 다르다는 반응을 보였다"며 "미국의 5월 고용지표도 예상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한 달 통계수치로 성급하게 판단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호성 크레디트스위스(CS)증권 상무는 "급락장에서도 삼성전자는 0.76% 하락에 그쳤고 하이닉스 현대차 기아차 등은 외국인이 매수에 가담하면서 오히려 주가가 올랐다"며 "단기적으로 매수세가 집중됐던 은행주가 지수를 끌어내렸다"고 분석했다.

한 유럽계 증권사 국내 대표는 "2657억원의 외국인 순매도 규모는 주말 미국 · 유럽시장이 폭락한 것에 비하면 상당히 작다"며 "외국인은 공포감에 주식을 내던지는 '패닉 셀링'보다는 우량주를 저가에 매입할 기회를 노리는 '바겐 헌팅' 분위기가 강했다"고 귀띔했다.

◆외국인 사들이는 IT · 자동차 관심


증시 수급의 열쇠를 쥔 외국인이 비교적 안정적인 태도를 보이고는 있지만 해외 금융시장이 진정되기까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10일 주가지수와 개별 종목의 선물 · 옵션 만기일이 겹치는 '쿼드러플 위칭데이'를 전후해 수급이 일시적으로 꼬일 수도 있는 만큼 성급한 저가 매수는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안승원 UBS 전무는 "유럽에서 연이어 불거지는 위험 요인들이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지수가 1600선 아래로 떨어지는 상황도 각오해야 한다"며 "미국의 실물지표도 냉탕과 온탕을 오가고 있어 투자심리가 불안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서영호 JP모간 리서치헤드는 "글로벌 경기 모멘텀이 꺾이면 거시지표에 민감한 한국 증시에 타격이 클 수 있다"며 "다만 유럽 이슈는 독일 프랑스 등 메이저 국가들로 확산될 가능성이 낮고 국내 증시는 가격 조정이 거의 마무리된 상태여서 부담이 덜하다"고 평가했다.

투자전략가들은 외국인이 매수 중인 IT와 자동차주,일부 내수주 등으로 제한적인 접근을 주문했다. 이달 들어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삼성SDI 삼성전자 등 IT주와 NHN 신세계 한국전력 등 경기방어주다. 현대차 기아차 한국타이어 등 자동차 관련주도 순매수 상위에 올랐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