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재정위기의 다음 타깃은 이탈리아일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 그리스발 재정적자 위기의 공포가 포르투갈,스페인을 거쳐 결국 유럽 4위의 경제대국 이탈리아까지 위협하는 지경이 됐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올해 2410억유로(약 352조원) 규모 국채 만기가 돌아오는 이탈리아의 '만기 연장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이탈리아 국채와 안전 자산인 독일 국채 간 수익률 격차가 급격히 커진 데다 국가의 부도위험 가늠 지표인 신용부도스와프(CDS) 가산금리도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4일 "유로존이 그리스 구제안을 발표하면서 그리스의 급작스러운 붕괴는 막았지만 대신 유럽 전역으로 재정적자 위기의 고통이 확산됐다"며 "이제 그리스보다 훨씬 큰 타깃인 이탈리아에 우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시장의 우려를 반영하듯 지난 3일 10년물 이탈리아 국채 수익률은 4.29%로 뛰어 지난해 7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탈리아 국채와 독일 국채 간 수익률 격차가 1.58%포인트까지 벌어져 충격을 줬다. 그리스발 위기가 정점에 달해 유로존이 7500억유로 규모의 긴급 재정안정화 방안을 발표했던 지난달 10일보다 격차는 더 커졌다. CDS 가산금리도 2.48%로 최고 수준을 보였다.

이탈리아의 재정적자 규모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5.3% 수준으로 10%를 훌쩍 넘은 그리스,스페인,아일랜드 등에 비해선 상당히 양호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경제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일단 그리스와 유사한 수준으로 국가부채 비율이 늘어날 경우 적절한 대처 방안이 없다는 점을 시장은 우려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투자자들이 이탈리아 투자를 꺼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페인의 경우와 유사한 차환 리스크도 일부 현실화되고 있다. ING에 따르면 이탈리아가 발행한 국채 중 2410억유로가 올해 만기가 돌아오며 이 중 1700억유로는 만기 연장이 아닌 상환을 해야 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탈리아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무너져 이탈리아의 자금조달 비용이 급증할 경우 심각한 '롤오버 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유럽 금융전문가들은 "이탈리아의 부채 규모는 1조5000억유로로 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3위"라며 "이탈리아가 부실화될 경우 유로존으로선 손쓸 대책이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탈리아까지 재정적자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스페인 등 다른 남유럽 국가 국채 가격도 한 달째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스페인의 경우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4.51%로 1년래 최고치가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럽 내 은행들이 서로 대출을 꺼리면서 유리보(유로존 은행 간 금리)도 연중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3개월물 유리보는 0.706%로 지난해 12월29일 이후 가장 높이 치솟았다. FT는 "유럽 은행들이 유로존 국가들의 채무 위기로 거래 상대방의 채무 상환 능력에 의구심을 품은 채 은행 간 대출을 꺼리고 있다"며 "자금을 빌리려는 은행은 많지만 대출하려는 곳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이처럼 은행 간 돈줄이 마르는 상황에서 유럽중앙은행(ECB)의 특별예금 창구로만 자금이 몰려들고 있다. ECB는 1일물 예금에 0.25%의 낮은 금리를 제공할 뿐이지만 원금이 보장되기 때문에 3204억유로(지난 2일 기준)나 몰려 2008년 리먼 사태 때보다 오히려 예금액이 늘었다. 이런 가운데 이란이 외환보유액에서 유로화 비중을 낮추기 위해 450억유로를 매각하고 대신 달러를 사들일 예정이라고 발표,유로화 위상에 타격을 입혔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