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는 약세를 보였다. 전날보다 달러당 1엔 가까이 떨어져 92엔 중반에서 거래됐다. 증시에서 닛케이 평균주가는 전날보다 310엔 이상 급등해 9900엔 선을 넘었다. 전날 뉴욕 증시 상승도 호재였지만 차기 총리로 확실시되는 간 나오토 부총리 겸 재무상의 정책 방향에 시장의 기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간 부총리는 일본 정부 내에서 대표적인 엔화 약세주의자다. 엔화가 다른 주요 통화에 비해 고평가돼 있어 일본이 수출에서 손해보고 있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그가 총리가 되면 엔고를 억제해 수출을 지원할 것이란 전망이 이날 주가를 밀어 올렸다.

2일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의 돌연 사퇴로 혼란에 빠졌던 일본 금융시장은 간 부총리가 차기 총리로 급부상하면서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엔화 약세 불가피할 듯

간 부총리가 총리에 취임하면 엔화는 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지난 2월7일 재무상 취임 때 엔화 가치와 관련해 "경제계에서는 달러당 90엔대 중반이 적절하다는 시각이 많다"며 적정 환율을 '90엔대 중반'으로 제시했다. 당시 환율은 달러당 92엔 안팎이었다. 외환정책 책임자의 이 같은 발언으로 엔화 가치는 급락하고 주가는 급등했다. 그가 소신을 바꾸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엔화 약세는 불가피할 것이란 분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엔 약세가 소니나 도요타자동차 등 일본 수출업체들의 해외 실적을 향상시킬 것이라며 올 1분기(1~3월)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이 연율로 4.9% 증가한 데는 수출업체의 선전이 기여했다고 보도했다. 애널리스트들은 간 정권이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진 않겠지만 엔화가 지나치게 오르면 방치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04년 이후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고 있다.

◆재정적자 메우기 발등에 불

소비세 인상도 탄력받을 공산이 크다. 간 부총리는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편이다. 만약 총리에 취임하면 선진국 중 최악의 재정적자 상태인 일본의 재정을 정비할 가능성이 높다. 모리타 교헤이 바클레이즈캐피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간 부총리는 재정개혁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고,소비세 인상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총리 임기(4년) 중엔 소비세 인상을 논의조차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하토야마 총리와 대비된다.

간 부총리는 도쿄공대를 졸업한 변리사 출신으로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다 1980년 사회민주연합 후보로 중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진출했다. 1996년 민주당 결성 때 하토야마 총리와 손잡기도 했지만 이후 하토야마,오자와 이치로 등과 당권을 놓고 대립 관계를 유지했다. 1998년 민주당의 당권을 장악했으나 다음 해 선거에서 패하면서 하토야마 총리에게 대표직을 내줬다. 2002년 12월 다시 당 대표가 됐으나 2004년 5월 국민연금 보험료 미납 사건이 터지면서 또다시 백의종군하는 등 굴곡을 거쳤다. 지난해 8 · 30 총선 이후 민주당 정권 출범과 함께 부총리 겸 국가전략담당상에 발탁됐다가 올 들어 재무상을 맡아왔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