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춤은 곰삭은 느낌…백조의 애절함 묘사 딱이죠"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5층 서울시무용단 연습실.80여명의 무용수들이 튀튀와 토슈즈 대신 발목까지 내려오는 의상에 버선코가 들린 신발을 신고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에 맞춰 춤을 춘다.

뒤꿈치를 든 채 종종거리며 날아가는 백조의 모습을 표현하지만 몸의 곡선이 다르다.

원래 발레에서 지그프리드 왕자의 신부감인 각국 공주와 사신들이 춤을 추는 '디베르티스망(볼거리)'은 한국 궁중무용인 향발무와 승무,꽃춤으로 바뀌었다. 28~29일 서울시무용단(단장 임이조)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한국무용극 '백조의 호수' 연습 현장이다.

그 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이는 주인공 설고니(오데트)와 거문조(오딜)역을 맡은 무용수 박수정씨(25).그는 마법에 걸려 밤에만 사람으로 돌아오는 백조의 애절함을 극적인 표정으로 연기한다.

168㎝의 키와 긴 팔다리가 만들어내는 회전과 도약이 화려하다. 빼어난 미모에 더해 그의 기량과 강렬한 카리스마는 이미 전통무용의 대중화를 이끌 '스타감'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박씨는 "장단이 중요한 한국의 춤사위를 현악기가 주를 이루는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에 맞춰 추면서 음악과 춤의 호흡,감정선을 일치시키는 게 어렵다"며 "우리춤은 절제하고 곰삭은 느낌,무게감이 있어 음악과 동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통춤과 발레를 모르는 관객도 제 몸짓을 보고 '저건 슬픈 동작인가보다'가 아니라 '아 슬프구나'하고 느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무용단은 올해 첫 공연인 이 작품을 위해 40여명의 한국무용 전공자들을 불러모았다.

프리랜서인 박씨도 오디션을 통해 무용단 소속 이진영씨와 함께 주인공으로 더블캐스팅됐다. 그는 새로운 도전이 재미있다고 했다.

"한국무용 공연이 생각보다 많아요. 그런데 우리(무용관계자)들만의 잔치로 끝나는 게 안타까워요. 한국인의 흥과 신명,정서를 자극할 수 있는 춤사위로 보다 많은 대중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테크닉은 배우기만 하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

그는 국악예고 시절 부전공으로 현대무용과 발레를 택해 관절을 자유롭게 쓰고 몸을 곧게 세우는'풋업(put-up)' 자세 등을 익혔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을 졸업한 후 한번도 유명 무용단에 소속된 적이 없는 그가 무용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이수자 국수호씨 덕분이다. 2007년 7월 국립무용단의 입단 오디션에서 탈락한 그를 당시 심사위원이던 국씨가 자신의 작품 '남한산성에 피는 꽃-이화(梨花)''낙랑공주' 등에 잇따라 주인공으로 발탁했다.

"국 선생님이 만든 창작 무용극 '이화'는 병자호란 때 중국으로 끌려갔다 돌아온 화냥녀의 비극적인 삶을 다룬 작품이에요. 스물두 살의 무용수가 연기하기엔 쉽지 않았죠.하지만 다양한 표현력뿐만 아니라 파트너와 호흡을 맞추는 것 등을 배울 수 있어 제 춤 인생의 전환점이 됐습니다. "

'백조의 호수' 한국 버전은 전통춤의 대가인 임이조 단장이 예술감독 및 총괄안무를 맡았고 김남식(현대무용),김경영(발레) 등 외부 안무가도 가세했다. 웅장한 직선 대형과 푸에테(32회전)는 없지만 원과 곡선,정적인 동작으로 재해석했다. 발레에선 3시간짜리 공연이지만 이번에는 인터미션 없이 1시간30분으로 줄었다. 세종문화회관,2만~7만원.(02)399-1114~6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