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식 경영' 배우기 열풍] (9) "세계 1등 제품 여러개 갖는게 중요…규모는 버려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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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사장단과 함께 교토 간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새 우물 파기보다는 세계 1위와 격차 좁혀야
85세 호리바 고문 어린애 같아…일에 대한 열정·즐거움 느껴져
태양광 20년 적자 3년새 메운 교세라서 오너경영 되새겨
새 우물 파기보다는 세계 1위와 격차 좁혀야
85세 호리바 고문 어린애 같아…일에 대한 열정·즐거움 느껴져
태양광 20년 적자 3년새 메운 교세라서 오너경영 되새겨
머리 속을 고민거리로 가득 채운 채 윤 회장이 찾은 곳은 일본 교토였다. 작년 말 '젊은 피'를 대거 그룹 최고경영진에 전진 배치한 그는 3월 말 이들을 데리고 교토를 방문했다. 그룹의 미래상을 구하고자 하는 여정이었다.
윤 회장은 교토에서 해답을 찾았을까. 23일 윤 회장을 만나 궁금증을 풀었다. 그는 기자의 질문에 대뜸 자신의 수첩을 꺼내들더니 맨 앞장에 붙어있던 메모를 떼어줬다. '세계 1등을 만들기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이 메모는 3월12일 윤 회장이 교토 기업 탐방과 사장단 회의를 마치고 그동안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10가지 결의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룹 최고경영자(CEO)의 수첩에도 모두 같은 내용의 결의문이 적혀 있다.
◆잘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된다
"교토 기업이 잘나가는 이유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세계 1위이기 때문이지요. "
윤 회장은 "교토를 둘러보고 찾은 웅진그룹의 새로운 30년을 위한 목표는 명확했다"고 설명했다. 교토 사장단 회의에서도 "규모는 버려라.대신 세계 1위 제품을 여러 개 가져라.1등이 되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을 수차례 강조했다고 한다. 또 이를 위해 현재 사업군별로 세계 1위와의 갭(간극)을 좁힐 수 있는 해결점을 찾도록 지시했다. 새로운 우물을 파기보다는 지금 강점을 갖는 분야에서 1등을 하겠다는 윤 회장의 전략이다. 교토 방문 후 그룹 CEO들에게 나눠준 결의문의 제목이 '세계 일등을 만들기 위하여'라고 정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윤 회장은 "현재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정수기,공기청정기 등 외에 태양광용 잉곳,폴리실리콘 등이 웅진그룹의 차세대 성장엔진 분야에서 세계 1위와의 차이를 최대한 좁히는 것이 중요하다"며 "과거에 웅진그룹이 '세계 1위' 얘기를 하면 비웃음을 샀겠지만 이제는 때가 됐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판'을 벌여라
윤 회장은 세계 1등을 향한 첫번째 단추로 신나는 기업 문화의 정착을 꼽았다. 윤 회장은 호리바제작소와 교세라,일본전산 등을 돌면서 맨 처음 느낀 인상은 "그들의 일에 대한 열정과 즐거움이었다"고 강조한다.
"호리바제작소의 호리바 마사오 최고고문은 85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나누다보면 장난기 가득한 어린이 같습니다. 그 나이에 어떻게 그런 에너지와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지요. " 윤 회장은 CEO의 경영정신에 배어 있는 이 같은 즐거움과 엉뚱함이 기업문화로 확산되고 세계 1위 제품을 구현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해석했다.
그가 웅진그룹의 기업문화 개선 조직인 '신기나라 운동본부'를 발족시킨 것도 이 즈음이었다. 신기나라 운동본부는 '말랑말랑한 머리'를 가진 평사원들로만 구성된 CEO 직속기구로 일하기 좋은 기업을 위한 문화를 조성하는 게 목적이다. '어떻게 하면 직원들이 소풍가듯 들뜬 기분으로 출근할 수 있을까.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을까'. 오로지 이를 위해 놀고 쉬는 것만 연구한다.
윤 회장은 "교세라의 아메바 경영,무라타 제작소의 매트릭스 경영 등 교토 기업 특유의 조직 시스템은 여러 경영 전공자들의 사례 연구를 통해 잘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기업들이 도입에 실패했다"며 "이는 조직 구성에 치중하고 그 밑바탕이 되는 기업 문화의 차이를 간과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조직원들이 회사를 사랑하고,회사에서 판을 벌일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는 얘기다.
◆"올 R&D 투자 2배로 늘려라"
신나는 기업문화와 함께 윤 회장이 교토경영의 정수로 꼽는 것은 연구 · 개발(R&D)이다. 그는 "교토를 돌고 나서 '결국은 R&D'라는 말을 되뇌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장단 회의에서는 각 계열사들의 올해 투자계획을 듣고 "R&D 부문 투자를 계획보다 2배로 늘려라"고 지시했다. 특히 폴리실리콘 등 회사의 신규 성장 엔진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기로 했다. 윤 회장은 "앞으로 2~3년간은 2000년대 초 비데,공기청정기,연수기 등 신규 분야 진출에 대대적으로 나선 이후 10년 만에 가장 큰 규모의 R&D투자에 나서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세라는 태양광 부문에서 20년간 적자를 이어왔지만 이후 3년 사이에 이 적자를 모두 메우고 남을 만큼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전문 경영인체제에서도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 윤 회장은 "지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동안 교토 기업들이 고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은 위기 상황에서 오너 경영 특유의 장기투자가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
'교토식경영' 자세히 보려면 ▶hankyung.com/hot/ky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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