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를 잇는 家嶪] (93) 무림교역, '이동식 화장실' 개척자…문화공간 만들다
갤러리로 꾸며 쉼터 공간 탈바꿈…IT기술 접목 실시간 원격 관리
무림교역은 서울시 주택부국장을 마지막으로 17년간의 공직생활을 그만둔 이 회장이 1982년 6월 공동주택 관리 시범사업을 하면서 창업하게 됐다. 공직을 떠나 2년간 실직 상태에 있던 이 회장은 서울시의 첫 공동주택관리 시범사업인 가락동 시영아파트의 관리를 맡았다. 그는 "당시 공동주택은 공동생활의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초기여서 층간 소음과 관리 비리 등으로 이웃 간 갈등이 심해 이를 해결하는 것이 큰일 중 하나였다"고 회고했다.
소망교회 원로장로(당시 집사)인 이 회장은 1985년 5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울 여의도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장면을 TV로 보다가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수많은 사람이 참가하는 대규모 행사장에 화장실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회장은 '이동식 화장실'이라며 무릎을 쳤다. 이때부터 그는 화장실에 푹 빠졌다. 집을 팔아 셋방살이를 하면서 연구를 시작했다. 이 회장은 "국내에 이동식 화장실에 관한 자료가 없어 올림픽 등 큰 행사를 치른 일본 독일 미국 등지를 방문해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직접 설계도를 그려 만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이동식 화장실은 그해 9월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제33회 세계양궁대회에 20대를 첫 공급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어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 대전엑스포 세계잼버리대회 등 국제행사에 전적으로 공급됐다. 13대부터 17대에 이르기까지 대통령 취임식 행사장에도 무림 화장실은 변함 없이 자리를 지켰다. 이 회장은 "1980년대 들어 대규모 국제행사를 치르면서 사람들이 화장실 문화에 관심을 많이 가져 투자도 확대됐다"며 "건설현장 국립공원 해수욕장 등산로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수요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특히 1992년 개발한 자연발효식 화장실은 베스트셀러다. 현재 8월 말을 목표로 전국 예비군훈련장에 1000대(80억원 상당)가 깔리고 있다.
이 회사는 국내 업체 중 유일하게 미국 국제간이화장실협회(1987년 가입)와 일본화장실협회(1990년 가입)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선진 문물을 국내에 보급해왔다. 이 회장이 국제활동을 하면서 10여년간 전 세계 화장실 문화를 수집한 자료를 모아 1996년 출간한 저서 '호모 토일렛'은 화장실 분야의 교과서로 인정받고 있을 정도다.
국내 화장실 산업의 개척자로 문화활동에 힘쓰고 싶었던 이 회장은 호주 캔버라대를 중퇴하고 국내 광고회사에 다니던 아들 이성훈 대표(40)를 1998년 말 불러들였다.
이 대표는 입사 후 화장실의 고급화를 위한 연구개발과 영업을 담당했다. 내부에 세면대 방충시설 냉난방시설을 갖춘 2,3인용 모바일형,10인용 트레일러형 등 최신 제품을 잇따라 선보였다. 이들 제품은 2002년 한 · 일월드컵 때 전국의 월드컵 경기장에 설치돼 선진 한국 문화를 해외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이 대표는 "월드컵 기간 내내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전국의 월드컵 경기장에 설치된 화장실을 지켰다"며 "비누 수건 등을 갖춰 놓고 안전보호 유지를 해야 하는 등 국제축구연맹(FIFA)의 요구사항이 너무 까다로워 행사를 치른 뒤 몸무게가 5㎏이나 빠졌다"고 말했다. 또 해안가 문화유적지 등에 시설하는 '피아노 화장실' '펜션 화장실' 등 자연 친화형 디자인도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2004년 가업을 승계한 이 대표는 1년여 만에 화장실을 원격 관리할 수 있는 '토일링시스템(toiling=toilet+calling)'을 세계 최초로 내놓는다. 이 시스템은 SK텔레콤과 제휴해 옥외화장실 관리에 적용하고 있다. 이 대표는 "옥외 화장실을 무인 원격 실시간으로 관리하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며 "의정부,포천,거제,서울 성동구 등 8개 지자체의 옥외 화장실 50여개를 토일링시스템으로 관리한다"고 소개했다.
이 회사는 내년 말부터 옥외화장실에 태양광에너지 시스템을 적용하고 토일링시스템을 무선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 화장실 산업의 해외 진출을 목표로 최근 한국화장실산업협회를 발족시켰다"며 "우선 중국시장을 회원사 공동으로 공략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50억원의 매출을 올린 이 회사는 올해 국방부 예비군훈련장 공급 80억원을 포함,총 15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계주 기자 lee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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