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중랑천공원 내 공중화장실에 들어서면 잘못 들어온 게 아닌가 싶어 입구의 간판을 다시 쳐다보게 된다. 64㎡의 실내공간이 갤러리로 꾸며졌기 때문이다. 방문객을 재차 놀라게 하는 것은 첨단시설이다. 미술작품 보호를 위한 실내온도 관리 및 도난방지시설은 물론 냄새를 제거하는 특수 환기시스템을 갖췄다. 또 실내온도,정전과 화재 감시,방문인원수 등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 원격관리 시스템을 깔았다. 물론 소모용품 교체 주기도 실시간 모니터링된다. 국내 최초의 고정식 및 이동식 화장실 생산업체인 무림교역(회장 이상정 · 75)이 탄생시킨 '유비쿼터스형 갤러리화장실'이다. 이상정 회장은 "공중화장실 하나를 지으려면 최소 2억원에서 최고 10억원까지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며 "화장실이 단순히 배출공간이 아니라 창조적 쉼터란 생각에 갤러리화장실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무림교역은 서울시 주택부국장을 마지막으로 17년간의 공직생활을 그만둔 이 회장이 1982년 6월 공동주택 관리 시범사업을 하면서 창업하게 됐다. 공직을 떠나 2년간 실직 상태에 있던 이 회장은 서울시의 첫 공동주택관리 시범사업인 가락동 시영아파트의 관리를 맡았다. 그는 "당시 공동주택은 공동생활의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초기여서 층간 소음과 관리 비리 등으로 이웃 간 갈등이 심해 이를 해결하는 것이 큰일 중 하나였다"고 회고했다.

소망교회 원로장로(당시 집사)인 이 회장은 1985년 5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울 여의도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장면을 TV로 보다가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수많은 사람이 참가하는 대규모 행사장에 화장실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회장은 '이동식 화장실'이라며 무릎을 쳤다. 이때부터 그는 화장실에 푹 빠졌다. 집을 팔아 셋방살이를 하면서 연구를 시작했다. 이 회장은 "국내에 이동식 화장실에 관한 자료가 없어 올림픽 등 큰 행사를 치른 일본 독일 미국 등지를 방문해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직접 설계도를 그려 만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이동식 화장실은 그해 9월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제33회 세계양궁대회에 20대를 첫 공급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어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 대전엑스포 세계잼버리대회 등 국제행사에 전적으로 공급됐다. 13대부터 17대에 이르기까지 대통령 취임식 행사장에도 무림 화장실은 변함 없이 자리를 지켰다. 이 회장은 "1980년대 들어 대규모 국제행사를 치르면서 사람들이 화장실 문화에 관심을 많이 가져 투자도 확대됐다"며 "건설현장 국립공원 해수욕장 등산로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수요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특히 1992년 개발한 자연발효식 화장실은 베스트셀러다. 현재 8월 말을 목표로 전국 예비군훈련장에 1000대(80억원 상당)가 깔리고 있다.

이 회사는 국내 업체 중 유일하게 미국 국제간이화장실협회(1987년 가입)와 일본화장실협회(1990년 가입)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선진 문물을 국내에 보급해왔다. 이 회장이 국제활동을 하면서 10여년간 전 세계 화장실 문화를 수집한 자료를 모아 1996년 출간한 저서 '호모 토일렛'은 화장실 분야의 교과서로 인정받고 있을 정도다.

국내 화장실 산업의 개척자로 문화활동에 힘쓰고 싶었던 이 회장은 호주 캔버라대를 중퇴하고 국내 광고회사에 다니던 아들 이성훈 대표(40)를 1998년 말 불러들였다.

이 대표는 입사 후 화장실의 고급화를 위한 연구개발과 영업을 담당했다. 내부에 세면대 방충시설 냉난방시설을 갖춘 2,3인용 모바일형,10인용 트레일러형 등 최신 제품을 잇따라 선보였다. 이들 제품은 2002년 한 · 일월드컵 때 전국의 월드컵 경기장에 설치돼 선진 한국 문화를 해외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이 대표는 "월드컵 기간 내내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전국의 월드컵 경기장에 설치된 화장실을 지켰다"며 "비누 수건 등을 갖춰 놓고 안전보호 유지를 해야 하는 등 국제축구연맹(FIFA)의 요구사항이 너무 까다로워 행사를 치른 뒤 몸무게가 5㎏이나 빠졌다"고 말했다. 또 해안가 문화유적지 등에 시설하는 '피아노 화장실' '펜션 화장실' 등 자연 친화형 디자인도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2004년 가업을 승계한 이 대표는 1년여 만에 화장실을 원격 관리할 수 있는 '토일링시스템(toiling=toilet+calling)'을 세계 최초로 내놓는다. 이 시스템은 SK텔레콤과 제휴해 옥외화장실 관리에 적용하고 있다. 이 대표는 "옥외 화장실을 무인 원격 실시간으로 관리하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며 "의정부,포천,거제,서울 성동구 등 8개 지자체의 옥외 화장실 50여개를 토일링시스템으로 관리한다"고 소개했다.

이 회사는 내년 말부터 옥외화장실에 태양광에너지 시스템을 적용하고 토일링시스템을 무선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 화장실 산업의 해외 진출을 목표로 최근 한국화장실산업협회를 발족시켰다"며 "우선 중국시장을 회원사 공동으로 공략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50억원의 매출을 올린 이 회사는 올해 국방부 예비군훈련장 공급 80억원을 포함,총 15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계주 기자 lee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