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마케팅은 惡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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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회가 주요 통신사업자들을 대상으로 행정지도 차원의 마케팅비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뒤, 정부와 일부 통신사업자 간 신경전이 벌어지고 통신사업자 간에도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양상이다. 물론 정부는 필요하다면 행정지도가 아니라 그 이상의 규제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규제가 과연 정당하고,또 성공할 수 있느냐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최소한 4가지 기준에서 하자가 없어야 한다. 규제의 타당성,규제설계의 합리성,실행가능성,그리고 타이밍이 그것이다. 이번 마케팅비 규제는 과연 이런 기준을 충족하는 것인가.
먼저, 규제의 타당성 측면에서 방통위는 소모적 마케팅비를 절감해 이를 콘텐츠와 기술개발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이번 규제가 통신사 CEO들과의 합의에 따른 후속조치라는 설명이고 보면 규제당국으로서는 명분을 확보한 듯하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논란의 소지가 있다. 콘텐츠와 기술개발은 생산적이고 마케팅은 소모적이라는 이분법이 옳은 것인지,정부가 경쟁을 주문하면서 콘텐츠와 기술개발 경쟁은 환영하지만 마케팅 경쟁은 제한적으로 하라는 게 또 설득력이 있는 것인지, 보다 근본적으로는 어디까지가 정부가 관여할 영역이고 어디서부터 기업의 경쟁전략에 해당하는지 등 제기될 수 있는 의문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취지가 옳다고 해도 규제가 제대로 설계됐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방통위는 통신사업자들이 유 · 무선을 분리해 각각 매출액 대비 22%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마케팅비를 지출하고,1000억원까지는 유 · 무선을 이동해 쓸 수 있도록 했다. 유 · 무선 통합을 촉진하겠다는 정부의 정책과 달리 유 · 무선을 구분짓는 것은 무엇이며, 22%나 1000억원 등은 어떤 합당한 근거에서 나온 수치들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방통위는 마케팅비 제한의 이유를 지난 몇 년간 통신사들이 마케팅비를 경쟁적으로 늘려왔음에도 가입자 점유율에는 변화가 없다는 데서 찾고 있다. 그런 논리라면 기업들은 앞으로 마케팅으로 시장구도를 변화시킬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라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실행가능성 측면에서도 문제점이 엿보인다. 정부는 유 · 무선 분리에 따른 마케팅비 제한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회계분리의 적정성 여부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겠다고 하지만,그 때마다 정부와 사업자 간, 또 사업자 간에 시비가 발생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국회에서는 벌써 반(反)시장적 조치라는 비판이 나오고,공정위도 담합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특히 공정위는 담합관련 지침에 "행정지도가 부당한 공동행위의 원인이 됐다고 해도 그 부당한 공동행위는 원칙적으로 위법"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기업이 정부의 행정지도를 따랐어도 벌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남는 의문은 타이밍 측면에서 왜 하필 지금인가 하는 것이다. 정부는 스마트폰을 확산시키고 무선데이터 시장을 키우는 게 시급하다고 말해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단말기 보조금을 겨냥한 마케팅비 규제는 그런 정책 방향과 어울리지 않는다. 기술개발과 콘텐츠만으로 시장이 활성화되는 것은 결코 아닌 까닭이다.
이 모든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정부의 마케팅비 가이드라인으로 야기된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IT산업이 대(大)변혁기를 맞이한 지금 정말 소모적인 것은,마케팅비가 아니라 끝도 없는 이런 논란의 양산일지도 모른다.
안현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그런 점에서 보면 최소한 4가지 기준에서 하자가 없어야 한다. 규제의 타당성,규제설계의 합리성,실행가능성,그리고 타이밍이 그것이다. 이번 마케팅비 규제는 과연 이런 기준을 충족하는 것인가.
먼저, 규제의 타당성 측면에서 방통위는 소모적 마케팅비를 절감해 이를 콘텐츠와 기술개발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이번 규제가 통신사 CEO들과의 합의에 따른 후속조치라는 설명이고 보면 규제당국으로서는 명분을 확보한 듯하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논란의 소지가 있다. 콘텐츠와 기술개발은 생산적이고 마케팅은 소모적이라는 이분법이 옳은 것인지,정부가 경쟁을 주문하면서 콘텐츠와 기술개발 경쟁은 환영하지만 마케팅 경쟁은 제한적으로 하라는 게 또 설득력이 있는 것인지, 보다 근본적으로는 어디까지가 정부가 관여할 영역이고 어디서부터 기업의 경쟁전략에 해당하는지 등 제기될 수 있는 의문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취지가 옳다고 해도 규제가 제대로 설계됐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방통위는 통신사업자들이 유 · 무선을 분리해 각각 매출액 대비 22%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마케팅비를 지출하고,1000억원까지는 유 · 무선을 이동해 쓸 수 있도록 했다. 유 · 무선 통합을 촉진하겠다는 정부의 정책과 달리 유 · 무선을 구분짓는 것은 무엇이며, 22%나 1000억원 등은 어떤 합당한 근거에서 나온 수치들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방통위는 마케팅비 제한의 이유를 지난 몇 년간 통신사들이 마케팅비를 경쟁적으로 늘려왔음에도 가입자 점유율에는 변화가 없다는 데서 찾고 있다. 그런 논리라면 기업들은 앞으로 마케팅으로 시장구도를 변화시킬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라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실행가능성 측면에서도 문제점이 엿보인다. 정부는 유 · 무선 분리에 따른 마케팅비 제한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회계분리의 적정성 여부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겠다고 하지만,그 때마다 정부와 사업자 간, 또 사업자 간에 시비가 발생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국회에서는 벌써 반(反)시장적 조치라는 비판이 나오고,공정위도 담합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특히 공정위는 담합관련 지침에 "행정지도가 부당한 공동행위의 원인이 됐다고 해도 그 부당한 공동행위는 원칙적으로 위법"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기업이 정부의 행정지도를 따랐어도 벌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남는 의문은 타이밍 측면에서 왜 하필 지금인가 하는 것이다. 정부는 스마트폰을 확산시키고 무선데이터 시장을 키우는 게 시급하다고 말해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단말기 보조금을 겨냥한 마케팅비 규제는 그런 정책 방향과 어울리지 않는다. 기술개발과 콘텐츠만으로 시장이 활성화되는 것은 결코 아닌 까닭이다.
이 모든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정부의 마케팅비 가이드라인으로 야기된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IT산업이 대(大)변혁기를 맞이한 지금 정말 소모적인 것은,마케팅비가 아니라 끝도 없는 이런 논란의 양산일지도 모른다.
안현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