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예금보험공사에서는 새로운 노조위원장을 뽑는 보궐선거가 진행됐다. 전임 노조위원장이 대의원들의 발의로 지난달 12일 탄핵받은 지 한 달여 만이다. 당시 노조총회에서 조합원 465명 중 297명이 참석해 70%가 넘는 찬성률로 노조위원장을 파면했다. 공기업 노조위원장이 조합원의 불신임을 받아 임기 중 물러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 공기업 노조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재적 조합원 과반수 이상이 참석하고,참석 조합원 3분의 2 이상 찬성해야 하는 탄핵요건을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다"며 "공기업 노조 역사상 유례 없는 일이 벌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예보 내에선 노조의 비민주적 운영과 함께 조합원의 정서를 무시하고 강경투쟁을 고집한게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말 금융공기업은 정부 방침에 따라 기본급 5% 삭감을 위한 노사협상을 벌였으나 예보는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노사관계 선진화를 앞세운 정부의 압박이 노조 입지를 약화시킨 측면도 있지만 대다수 직원들의 정서는 정부로부터 예산 승인을 받는 공기업의 한계상 임금삭감은 불가피하다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하지만 위원장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치면서 전 금융공기업 노사가 기본급 삭감에 합의한 상황에서도 예보만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위원장이 5% 삭감의 조건으로 3년 뒤 15%를 한꺼번에 올려달라는 이면계약을 회사 측에 요구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결국 대의원들이 노조위원장을 배제한 채 노사 동수의 별도위원회를 통해 중재안을 만들고 직원들이 릴레이 지지표명을 하면서 공기업 중 가장 늦게 임금삭감안을 통과시키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 이전에도 예보는 단체협약이 해지되고 노조 집행부가 대거 사퇴하는 등 노사관계가 파열음을 내기도 했다.
한 노조원은 "파업이나 투쟁은 조합원의 임금상승과 복지증진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며 "비록 투표를 통해 선출됐다 하더라도 조합원 절대 다수의 의사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보궐선거를 통해 새로 뽑힌 노조위원장이 예보 노사문화에 어떤 이정표를 세울지 주목된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