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닷컴] “법관은 양쪽 주장을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는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그리고 자신의 판단이 정당한 이유를 설득력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지요.아무리 좋은 판결이라 해도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옳은 판결이 아닙니다.”

제10회 2010 서울 세계여성법관회의 참가를 위해 방한한 브렌다 헤일 영국 대법원 대법관(65)은 12일 서울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이와 같이 말했다.헤일 대법관은 영국 최초의 여성대법관으로,최근 세계여성법관협회(IAWJ) 차기 회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세계여성법관협회는 세계 96개국 4480여명의 여성 법관을 회원으로 둔 조직이다.

헤일 대법관은 사법부와 입법부 사이 벌어질 수 있는 긴장에 대해서는 “영국에서는 특정 정치인이 대법원 판결에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판결이 아니라 유럽인권조약 등 법률상 문제점을 지적한다”고 설명했다.그는 “영국 정부도 판결에 항상 동의하지는 않지만,그렇다 하더라도 사법부가 법률에 따라 옳은 결정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신뢰를 지니고 있다”고 덧붙였다.헤일 대법관은 또 “영국의 경우 영국 법률과 같은 효력이 인정되는 유럽인권조약에 따라 판결을 하고 있는데,영국 정부는 이같은 법률 해석을 놓고 치열하게 법정 공방을 벌이기도 한다”면서 “하지만 설령 패소한다 해도 법원의 결정을 존중하고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사법부 독립에 대해 헤일 대법관은 최근 테러리즘 대응 입법을 두고 영국 사법부와 정부가 보이는 입장차를 예로 들었다.“국가가 국민의 보호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새로 제정한 법률에는 인권침해적인 요소가 포함돼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예를 들면 증거가 아닌 의심만으로 구속할 수 있고,법원이 아니라 행정부 결정으로도 억류할 수 있고,사람을 구속하면서도 구속 사유를 비밀로 하는 새로운 절차도 도입됐습니다.영국 사법부는 이런 상황에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호하는 방향으로 판결하고,입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국민 보호와 인권 침해 사이에서 사법부가 어떻게 균형을 맞출 수 있을지가 전세계 사법부의 고민입니다.최악의 경우 정부와 코드가 맞는 특정 판사에게 특정 사건을 맡기는 등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고자하는 유혹을 정부가 느낄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여성 대법관으로서 그는 “다양한 경험을 지닌 법관으로 사법부가 구성돼야 한다”면서 “법관의 개인적인 경험이 법원 안에서 공유되면서 전체적으로 판결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헤일 대법관은 또 “많은 여성 법관들이 실력을 갖췄으면서도 기회를 잘 얻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다”고도 전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