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프행어(cliffhanger · 절벽에 매달린 것처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초접전) 끝에 '헝 의회(Hung Parliament)'가 도래했다. "(7일 더 타임스)

6일 실시된 영국 총선에서 36년 만에 어느 정당도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는 '헝 의회'가 등장했다. '헝 의회'라는 용어는 1974년 영국의 일간 가디언이 과반 의석 정당이 없는 당시 총선 결과를 놓고 "마치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처럼 불안하다"고 비유한 뒤부터 널리 퍼졌다. 비례대표제와 강력한 지역정당이 있어서 중앙 의회에 절대 다수당이 없는 상황이 늘상 발생하는 독일 이탈리아 아일랜드 캐나다 같은 나라에선 '헝 의회'란 말 대신 '연정' '소수정부'와 같은 용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등 대부분 유럽 국가가 연정 형태로 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하지만 양당제의 전통이 확고하게 자리잡은 영국에선 대부분의 총선에서 노동당이나 보수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해 단독으로 정권을 잡아와 '헝 의회'가 결코 낯익은 상황은 아니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과반 의석을 확보해야 집권당으로 인정하는 관례가 유지돼왔기 때문에 '헝 의회'가 발생할 경우 정부 구성을 둘러싼 논란은 늘 분분할 수밖에 없다. 보통 제1당이 집권하는 게 자연스럽지만 연정을 거치면 어느 쪽이 집권하든 정통성에 상처를 입고 오래가지 못했다. 이렇듯 영국에서 정치 불안정이 심화되던 시기나,정치 지형이 크게 변하던 시기에 간헐적으로 등장하던 '헝 의회'가 이번에 재연되면서 경제위기에 직면해 있는 '영국호'의 향방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역사적으로 영국에선 17세기 의회정치가 확립된 이후 오랫동안 자유당과 보수당 양당 체제가 굳어진 가운데 '헝 의회'는 19세기 후반까지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19세기 들어 영국 의회와 아일랜드 의회가 합쳐지면서 의석 구성상 양당제에 일시 균열이 일어났다. 아일랜드 자치법안(홈룰)이 쟁점이 됐던 1885년 총선에서 최초의 '헝 의회'가 등장했지만 아일랜드 자치를 반대하는 보수당이 뜻을 같이하는 자유당 내 일부 분파와 손잡고 집권하면서 '헝 의회'는 이내 사라지게 된다.

이어 1차 세계대전 이전 노동당이 자유당의 자리를 대체하는 과정에서 몇 차례 '헝 의회'가 영국 헌정사에 나타났지만 1929년 총선에서 '헝 의회'가 이뤄진 이후 한동안 모습을 감췄다. 이후 45년 만인 1974년 2월 총선에서 노동당이 37.2%의 지지율로 301석,보수당이 37.8%의 지지율로 297석을 차지해 양당 모두 과반인 318석을 얻지 못하면서 '헝 의회'가 재연됐다. 그러나 법안 처리 등이 원활히 이뤄지지 못하고 정국 불안이 이어지자 그해 10월 다시 총선을 실시,노동당이 과반에서 3석 많은 의석을 확보하면서 정치 불안의 상징이었던 '헝 의회'에 종지부를 찍는다.

이후 30여년 이상 '헝 의회'가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각종 재보궐 선거 결과 일시적인 '헝 의회' 출현은 잦았다. '불만의 겨울' 당시인 1979년 제임스 캘러헌 정부하에서도 잠시 '헝 의회'가 구성됐고,근래에는 보수당의 존 메이저 총리 시절인 1996년 회기 중간에 보궐 선거에 의해 재연됐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