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명성의 경매회사 크리스티가 1억파운드(1700억원)짜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을 19세기 무명 화가의 작품으로 잘못 감정해 불과 1만1400파운드(1960만원)의 '헐값'에 판매토록 했다는 혐의로 제소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6일 '크리스티가 다빈치의 작품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바람에 그림의 원소유자가 추정가의 1만분의 1밖에 받지 못했다고 제소했다'고 보도했다.

크리스티를 곤혹스럽게 만든 작품은 '르네상스 의상 차림의 젊은 여인'이라는 제목의 인물화.색분필과 펜,잉크 등으로 그려져 있다.

1998년 경매 당시 '19세기 독일학파'라는 카탈로그 속에 포함됐던 이 작품은 1만9000달러(1만1400파운드)에 뉴욕의 미술품 거래상인 케이트 갠즈에게 판매됐으며 그는 2007년 같은 값에 캐나다 출신의 미술 애호가인 피터 실버맨에게 다시 팔았다.

하지만 이후 이 작품이 다빈치의 지문이 찍힌 희귀작이라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당초 이탈리아에서 공부하던 독일 미술학도가 다빈치 기법을 본떠 그린 것으로 생각됐으나 탄소연대 측정과 적외선 분석 결과 19세기가 아니라 1440~1650년에 제작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작품 제작 기법이 다빈치와 일치하고 그림 상단에 찍힌 희미한 지문자국이 로마 바티칸 성당의 '성 예로니모'에 찍힌 다빈치의 것과 '매우 유사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세계 미술계가 '희대의 발견'에 흥분했다.

게다가 옥스퍼드대학 예술사 교수인 마틴 캠프가 인물화 속 주인공을 밀라노 공작 루도비코 스포르자(1452~1508년)의 딸인 비앙카 스포르자로 밝혀내면서 작품명도 '아름다운 왕녀(La Bella Principessa)'로 바뀌었다.

당연히 작품 가치도 엄청나게 치솟았다. 캠프 교수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한 인물화는 다빈치에게 걸맞은 것"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현재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전시되고 있는 다빈치 작품에 관심이 높아지고 가격이 급등하면서 마침내 작품의 원소유자가 변호사를 통해 크리스티를 '업무태만' 혐의로 고소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원소유자는 영국에서 동물복지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진 마칭.그는 변호사들을 동원해 미국 뉴욕 맨해튼연방법원에 "크리스티가 작품 감정에 필요한 '적합한 절차와 검증'을 실시하지 않아 작품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 채 팔아야 했다"며 제소했다.

크리스티가 과학적 검증을 통해 작품의 제작 시기 등을 파악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크리스티의 '잘못된' 경매로 인한 피해 금액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진 않았지만 상당한 규모의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크리스티 측은 "크리스티가 부실하게 경매작업을 진행했다는 원소유자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며 정면대결 입장을 밝혔다. 또 '아름다운 왕녀'가 다빈치의 작품이 아닐 수 있다는 점도 제기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