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제약사 A사의 영업담당 K상무는 최근 친구처럼 지내온 B의원 L원장을 찾아갔다가 냉대를 받았다. 그는 "지난해 8월 리베이트 약가연동제 시행 이후 제약사 영업맨과 의사들의 관계가 소원해졌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쌍벌제 도입으로 이제 제약 영업 시대는 끝난 것 같다"고 말했다.

리베이트를 주다 적발되면 약값 20%를 깎는 '리베이트 약가연동제'에 이어 주고 받는 양측을 모두 처벌하는 '리베이트 쌍벌제 법안'이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제약회사 영업맨들이 시련의 시기를 맞고 있다. 쌍벌제 법안에 반발하고 있는 의사 · 약사들이 제약사 직원과 접촉 자체를 거부하면서 제네릭(복제약)을 팔아야 하는 영업맨들의 입지가 더욱 좁아진 탓이다. 때문에 1분기 저조한 실적을 낸 제약업계는 쌍벌제에 대한 의료업계의 집단 반발이 이어질 경우 올해 사상 최악의 '어닝 쇼크'가 현실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저조한 실적 '침울'

실물경기 회복으로 대부분 업종이 1분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외치고 있지만 제약업계는 영업환경 악화에 따른 저조한 실적으로 침울한 분위기다. 신종플루 특수를 누렸던 녹십자를 제외하고 동아제약 유한양행 한미약품 등 '빅3' 제약사는 1분기 매출 성장이 시장 기대치를 크게 밑돌았다. 동아제약의 1분기 매출은 2010억원으로 전년 동기(1869억원) 대비 7.5% 증가해 그나마 선방했지만 유한양행과 한미약품은 각각 4.5%와 0.6% 성장하는 데 그쳤다. 상위 제약사들은 지난 수년 동안 평균 12~20%의 성장률을 유지했다. 이 밖에 LG생명과학 국제약품공업 일동제약 부광약품 등도 모두 성장률 3% 이하의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뒀다.

특히 영업이익에서 한미약품의 1분기 영업이익이 29억원으로 전년 동기(137억원)에 비해 78% 줄었고,부광약품(-29.3%) 일동제약(-52.3%) 국제약품공업(-52.4%) LG생명과학(-62.2%) 등이 일제히 마이너스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약가 연동제'로 인한 영업 위축이 1분기 실적에 반영됐다"며 "이보다 더 강력한 쌍벌제 도입 후 예상되는 실적 악화 등으로 현재 제약업계는 공포에 휩싸여 있다"고 말했다.

◆제약사간 실적 차별화 예고

'쌍벌제'에 대한 의사 · 약사의 반발이 예상보다 거세다. 의료업계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오는 10월 저가구매 인센티브제(고시 가격보다 의약품을 싸게 구매하면 그 차액의 70%를 인센티브로 되돌려주는 제도) 도입 전제 조건으로 쌍벌제 도입을 요구해온 제약업계에 "본때를 보여주자"며 국내 의약품 불매 운동을 결의하고 있다. 경남 김해시 의사회는 최근 제약사에 영업사원의 진료실 방문을 금지하는 내용의 특별공문을 발송했다.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가 향후 제네릭 대신 오리지널 신약 처방만을 강행할 뜻을 비치고 있는 점도 국내 제약사들의 실적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김지현 키움증권 연구원은 "의료계 반발을 수반한 영업환경 악화 등으로 당분간 제약사 실적이 나빠지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김 연구원은 그러나 "현재 쌍벌제로 인한 갈등은 사회적 합의를 거치기 위한 통과의례이며,향후 제약사 이익구조를 개선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브랜드 제네릭'을 갖고 있는 대형 제약사와 그렇지 못한 제약사 간 실적 차별화는 계속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