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시장 '날씨 쇼크'] 춘하복 매출ㆍ에어컨 예약판매 '뚝'…여행ㆍ레저업계도 '된서리'
27일 오후 2시 서울 명동.기온이 섭씨 6도까지 떨어진 데다 비바람까지 몰아치자 트렌치코트에 스카프를 싸맨 여성들이 몸을 한껏 웅크린 채 발걸음을 재촉한다. 양복 위에 '노스페이스' 로고가 큼직하게 붙은 바람막이 재킷을 입은 남성들도 줄을 잇는다.

영캐주얼 브랜드인 '행텐' 매장에선 반팔 티셔츠를 전시해 놓았지만,매장 앞을 지나는 사람들의 두툼한 옷차림이 대조적이다. 인근 신세계백화점 본점 5층에 자리 잡은 캐주얼 브랜드 'UGIZ' 매장.이틀 전만 해도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던 마네킹의 상의가 어느새 점퍼로 바뀌었다. 김소영 매니저는 "4월 말에 점퍼를 하루 5개나 판매한 적은 거의 없었다"며 "점퍼를 충분하게 준비하지 못한 탓에 상당수 고객들은 발걸음을 돌렸다"고 말했다.

'빼앗긴 봄'은 산업계 곳곳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의류업체들은 반팔 티셔츠 등 여름옷을 본격적으로 판매해야 할 시점에 '겨울성 봄 상품'을 다시 선보이고 있다. '꽃놀이' 특수를 누려야 할 여행업체들은 봄 상품 매출이 20~30% 감소했다. 에어컨 예약판매 실적도 뚝 떨어졌다.

◆봄 · 여름옷 안 팔려

대개 백화점들은 4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여름 신상품을 판매하지만,올해는 쌀쌀한 날씨 탓에 여름옷 등장이 늦어지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에 입점한 쿠아,플라스틱아일랜드 등 여성복 브랜드의 경우 4월 여름 의류 매출이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2%가량 줄어들었다.

조끼나 안감을 떼거나 부착할 수 있는 '트랜스포머' 의류가 잘 팔리는 것도 날씨 때문이다. 보니알렉스와 탑걸의 사파리 및 점퍼는 롯데백화점 본점 기준으로 이달에도 하루 평균 8~10장 이상 판매되고 있다. LG패션의 아웃도어 브랜드인 라푸마는 겨울용으로 생산했던 바람막이 재킷 덕분에 이달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0% 이상 늘었다.

심지어 대표적 겨울 상품인 모피 판매도 늘고 있다. 이달 1일부터 26일까지 신세계백화점의 모피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97.1%나 증가했다. 경기회복의 영향도 있지만 추운 날씨도 한몫했다는 설명이다.

롯데백화점 영패션팀 이승주 상품기획자(MD)는 "상당수 의류업체가 '봄이 사라져가는' 트렌드를 반영해 니트나 점퍼류를 평균 20~30% 줄이는 대신 판매 사이클이 긴 '겨울성 봄제품' 생산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손문국 신세계백화점 여성복팀 부장은 "르샵 등 일부 의류업체들은 변덕스러운 날씨에 대응하기 위해 제품 기획에서부터 판매까지 걸리는 기간을 10일 안팎으로 줄인 상태"라고 설명했다.

[내수시장 '날씨 쇼크'] 춘하복 매출ㆍ에어컨 예약판매 '뚝'…여행ㆍ레저업계도 '된서리'
◆꽃놀이 실종…여행업체 울상

이상저온 현상은 가뜩이나 천안함 사태로 인한 '여행 자제 분위기'로 타격을 입은 국내 여행업체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이철구 웹투어 차장은 "4월 중순 이전의 봄 여행상품 판매는 지난해의 70~80% 선에 머물렀다"며 "4월 중순 이후에도 날씨를 종잡을 수 없어 봄 장사에 타격을 입고 있다"고 말했다. 이 차장은 "봄에는 바깥나들이를 하는 이들이 크게 늘어나는데 올해는 상대적으로 추운 날이 많아 나들이객이 확 줄어든 것 같다"며 "유난히 개화가 늦은 봄꽃 상품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 예년과 같은 구전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트레킹 전문인 승우여행사의 이종승 대표는 "날씨가 들쭉날쭉했던 올해 봄 장사는 작년보다 10%는 못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태형 서울랜드 과장도 "내방객이 지난해보다 10%가량 감소했다"며 "최소한 주말에 1만5000명,주중엔 1만명 이상 와야 하는데 오늘도 단체 예약객이 1000여명이나 줄었다"고 말했다.

◆급등하는 채소값…식탁물가 비상

농수축산물 가격도 오를대로 오른 상태다. 서울시 농수산물공사에 따르면 이날 무 한 포대(18㎏) 도매가격은 1만5183원으로 작년 이맘때의 7161원에 비해 2배 이상 뛰었다. 양파는 ㎏당 1044원에서 1474원으로 올랐다. 채소류는 통상 4월 말이면 봄 채소가 나와 가격이 내리지만 올해는 냉해 탓에 봄 채소 출하가 늦어진 데다 출하량도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이상기온 탓에 생육이 나빠져 닭고기 소매가격도 ㎏당 5924원으로 한 해 전의 5194원보다 800원가량 상승했으며,수온 저하에 따른 어획량 감소로 갈치 한 마리도 6429원으로 26% 올랐다.

오상헌/김재일/김현석/김미희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