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프레스콧 애리조나주립대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 정부의 정책은 아주 시의적절하고 효과적이었다"며 "금리인상을 결정할 때는 국제적인 압력보다는 한국의 시장상황과 경제사정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경제TV와 한경미디어그룹이 지난 20,21일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개최한 '2010 세계 경제 · 금융 컨퍼런스'에 참석한 프레스콧 교수는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국제부장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200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레스콧 교수는 "글로벌금융위기 이후에도 한국은 금융규제를 강화하지 않고 시장흐름을 중시하면서 일관성 있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며 "한국은 가던 길을 가야 한다(Go your way)"고 거듭 강조했다.

프레스콧 교수는 1930년대의 대공황부터 현재까지의 경제지표를 놓고 경제위기가 나타났던 때의 공통점을 들어가며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을 명쾌하게 분석했다.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선 구체적인 지표를 내놓지 않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에 도움이 되려면 저(低)세율을 유지하고 외환보유액을 늘릴 필요성이 있으며 일부에서 나오고 있는 보호주의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1분기 성장률(11.9%)이 예상을 뛰어 넘는 '서프라이즈'로 나왔습니다. 한국 경제에도 상당한 플러스 요인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만.

"현재 경기침체는 북미와 유럽에 집중돼 있습니다. 물론 유럽의 모든 국가가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에 비해 한국은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면서 빠른 경제 회복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정부 정책이 훌륭했습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경기과열과 정부부채 등의 문제가 파생됐지만 말입니다. "

▼국제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2'에서 1997년 외환위기 이전 수준인 'A1'으로 전격 상향 조정했는데요.

"유럽이나 미국은 금융위기 이후 규제가 많아지고 있는 반면 한국은 여전히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많습니다. 한국은 이미 부자 국가입니다. 서유럽 경제수준도 곧 따라 잡을 것입니다. 아시아 경제 성장에 대한 기대가 큰 상황에서 한국 신용등급이 오른 것은 한국증시와 원화자산에 대한 외국인들의 기대치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

▼한국에서도 기준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만.

"한국은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개최합니다.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금리인상은 다른 나라의 압박보다는 자기 나라의 경제사정을 감안해서 결정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이 저금리를 조정할 시기가 아니라고 봅니다. 한국이 금리를 먼저 올리지 않는다고 해서 나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금융위기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은 훌륭했습니다. 정책이 일관성이 있고,시장의 움직임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금융에 대한 규제강화 움직임도 한국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을 유지하는게 좋습니다. "

▼한국에 금융위기로 인해 남아 있는 리스크는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환율입니다. 외부변수에 의해 환율이 출렁거려 국가 경제가 영향을 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한국은 외환보유액을 늘려 환율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대규모 외환을 보유하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듭니다. 하지만 그 비용에 비해 환율 안정으로 인한 이익이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 아시아 국가들은 유럽처럼 하나의 통화권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

▼미국의 자동차 판매량과 주택경기,채권시장 등을 보면 경기가 나아지고 있는 조짐이 보입니다. 세계 경제가 다시 침체로 빠지는 '더블딥' 가능성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세계 경제가 더블딥에 빠질 가능성은 낮습니다. 가장 큰 변수는 미국 경제입니다. 세계 경제 정상화의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많은 기업가들은 경제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실업률은 여전히 높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애리조나주립대에서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학생들이 취업시장에서 많은 선택권이 있었는데 현재는 아주 우수한 몇몇 학생만 취업할 기회를 갖고 있는 현실입니다. "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언제쯤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보는지요.

"어려운 질문입니다. 경제에서는 원리적으로 봤을 때 세금을 낮추고 지출을 줄이면 경제가 호황을 맞이합니다. 그러다가 과열 조짐이 보이면 자연스레 금리를 올리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금리 인상 시기를 잘못 잡으면 미국도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겪을 수도 있겠지요. 이런 리스크를 줄이려면 미국은 끊임없이 혁신과 개혁을 추구해야 합니다. "

▼출구전략에서 국제공조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습니다. G20 정상회의 의장국인 한국이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저는 항상 중앙집권적인 금융제도를 우려해 왔습니다. 금융과 관련된 부문에서 정부의 인위적인 정책을 지양해야 합니다. 국제공조도 마찬가지고요. 출구전략이 다른 나라에 주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예상 가능한 제스처를 취하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정부의 인위적인 정책이 지나치게 되면 자유시장경제가 아닌 중앙집권적인 경제로 탈바꿈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면 시장은 실패합니다. 다행히 한국은 시장의 원리를 잘 따르고 있습니다. "

▼미국과 중국이 G2(주요 2개국)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두 나라 사이에는 위안화 절상이라는 간극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외부 사람들이 한 나라의 환율을 결정할 권한은 없습니다. 중국 또한 그런 얘기를 듣지 않을 것입니다. 중국 내부의 경제가 과열 현상이 이어진다고 판단할 때 위안화를 절상할 것으로 봅니다. 중국 환율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중국의 보호무역조치입니다. 1930년대 대공황 때 미국이 방아쇠를 당긴 보호무역주의는 세계 상업거래에 타격을 입혔습니다. 상업거래가 줄어 경제성장이 막히자 무역 대결이 정치적 대결로 치달았으며,결국은 2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다는 인식이 일반적입니다. 미국과 유럽 경제가 부진한 가운데 한국의 세계적인 기업들이 치고 올라오고 있습니다. 한국도 보호무역주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계속해서 위안화 절상 요구를 하고 있는데요.

"글로벌 불균형의 본질은 미국이 너무 많이 소비해왔고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의 왕성한 소비에 기대 수출을 늘려 왔다는 점입니다. 최근 미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지는 글로벌 불균형에 대한 논의는 1980년대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 벌어진 논의와 흡사합니다. 결국 1980년대에는 선진국 간의 글로벌 공조라는 외피를 쓰고 일본 엔화의 인위적 절상을 단행했습니다. 1985년의 플라자합의 직후 엔화 가치는 수직으로 치솟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통화가치 절상의 타깃으로 지목된 국가의 화폐가치가 높아지더라도 미국의 대외 불균형 개선 효과는 거의 없었다는 점입니다. 미국인들이 소비패턴을 바꾸지 않는 한 미국의 대외 불균형이 축소되기는 어렵습니다. 현재 미국의 젊은 층은 저축보다는 소비하기에 바쁩니다. "

▼정부 정책의 일관성에 대해 강조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정부 정책이 실패하는 가장 큰 요인은 시장의 자발적인 컨센서스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즉 시장이 알아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놔두는 것이 아니라 중앙집권적으로 정책을 명령하고 주입하는 악수(惡手)를 두게 되는 것입니다. 사회주의 경제정책으로 나라를 망친 아르헨티나가 대표적인 사례죠.이 나라는 국민들의 인적 자원도 훌륭하고 자원도 풍부하지만 정부의 중앙집권 성격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시장의 자율성을 무시했습니다. "

▼유럽발 재정 리스크가 부상하고 있는데요.

"투자자들은 그리스 재정부채가 커져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 움직임을 볼 때 현재화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현재와 같이 '하나의 유럽'을 추구하는 이상 한 나라의 위기가 도미노처럼 줄줄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의 재정 위기가 쉽게 재발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유로화의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6개 국가)의 발전 가능성은 어떻습니까.

"일각에선 그리스를 비롯한 남부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로 유로존이 파탄났다는 분석을 하기도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유로존은 발전할 것이라고 봅니다. 유럽 국가들은 위기 때마다 주요 개혁들을 실행한 적이 있습니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는 공공지출 삭감,금융개혁,인플레이션 억제 등의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북유럽 또한 주요 개혁조치들을 실행한 적이 있고요. 이처럼 정부 정책으로 인한 경제 변화는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

정리=박신영/이유정 기자 nyusos@hankyung.com

사진=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프레스콧 교수는…

△1940년 뉴욕 출생

△1962년 스와트모어대 수학과 졸업

△1963년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 경제학 석사

△1966년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강사

△1967년 카네기멜론대 경제학 박사

△1980년 미네소타대 경제학부 교수

△1980년 미국 경제학회 회원

△1992년 미국 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

△1998년 시카고대 교수

△2003년~현재 애리조나주립대 교수겸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 자문역

△200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실물경기변동이론 창시 및 경제정책의 효과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