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C(국제금융센터) HSBC 스탠다드차타드 등 각종 금융기관의 고층빌딩들로 빽빽한 홍콩 센트럴 지역은 아시아 금융허브로 통한다. 영국 고급백화점인 하비니콜스와 디자이너 편집매장 조이스를 비롯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 등 내로라하는 명품 부티크들이 가득해 '명품천국'으로도 불린다.

이들 매장의 주요 타깃은 여성. 하지만 한 럭셔리 브랜드가 이 지역 금융맨을 겨냥한 이색 매장을 선보여 눈길을 끈다. 리치몬트그룹 소속의 영국 남성 패션 브랜드'알프레드 던힐' 매장이다. 이 브랜드는 '까르띠에''반클리프앤아펠' 등 같은 그룹 소속의 주얼리 브랜드들이 몰려 있는 30층 규모의 프린스 빌딩에 3개층의 '홍콩 홈'을 열었다.

'던힐홈'은 전 세계에 단 4개밖에 없는 특별한 매장이다. 이번에 문을 연 홍콩홈이 영국 런던,일본 도쿄,중국 상하이에 이은 4번째다. '홈'은 다른 럭셔리 브랜드들이 전략 시장에 세우는 '메종'(집)이나 '플래그십 스토어'를 한 차원 뛰어넘는 공간으로, 제품 판매는 물론 개인극장 이발소 스파 레스토랑 바 라운지 등 차별화된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라이프스타일 매장이다.

◆남성들을 위한 럭셔리 문화공간

지난 22일 홍콩홈에서 만난 로버트 맨치니 알프레드 던힐 아시아퍼시픽 지사장은 "던힐은 2007년부터 글로벌 전략의 일환으로 이러한 '홈'을 선보이고 있다"며 "쇼핑은 물론 와인 저장 서비스,최고급 레스토랑 등 차별화된 서비스까지 제공받을 수 있는 남성들의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런 형태의 매장은 '알프레드 던힐'이 유일하다는 설명이다.

'홈'은 남성들을 위한 편안한 집을 표방한다. 언제든지 남성들이 방문해서 쇼핑할 수 있고, 휴식도 취하며 다양한 서비스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베네 차우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는 "그동안 여성들을 중심으로 럭셔리 브랜드들이 운영돼 왔다"며 "여성들이 누려온 만큼 이제 남성들도 럭셔리 브랜드를 즐기고 향유할 수 있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홍콩홈 1층에 들어서면 던힐의 117년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아카이브 컬렉션'이 펼쳐진다. 마구 제조업체에서 시작해 자동차 액세서리로 이름을 날린 브랜드답게 모터 가죽 드라이빙 코트, 헬멧, 자동차 경적,여행용 트렁크 등 남성들을 위한 용품들이 매장 곳곳에 전시돼 볼거리를 제공한다.

던힐홈을 둘러보면 남성들의 패션 아이템도 여성만큼이나 꽤 다양하다. 1층과 3층은 맞춤 정장부터 가죽 가방,서류 보관함,여행용 트렁크,만년필,시계,선글라스,커프스 등까지 남성들이 탐낼 만한 아이템들로 가득했다. 특히 홍콩홈 오픈을 축하하면서 특별히 제작한 '리미티드 에디션'(한정판)들이 진열대 위에서 빛을 발했다. 수공예 태닝 가죽으로 만들었다는 브라운 컬러의 브리프케이스와 토트백은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 8을 적용,단 88개만 제작한 제품이다. 또 럭셔리 자동차 '벤틀리'와 협업해 선보인 가죽 아이템들도 단숨에 남성고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기까지만 보면 다른 럭셔리 브랜드들의 '메종'과 별반 차이가 없다. 하지만 2층에 들어서면 '던힐홈'의 진수가 느껴진다. 계단을 오르자마자 3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런던 위스키 제조업체 '베리 브로스&러드(Berry Bros&Rudd)'의 대형 와인셀러가 한눈에 들어온다. 1900년산 아르마냑(3870만원),1945년산 무똥 로칠드(3720만원) 등 고가의 희귀 와인을 비롯해 400여병의 와인을 보유하고 있다. 홍콩홈은 또 '베리 브로스&러드'에서 파견된 매니저가 상주하면서 32명의 고객을 위한 10병씩의 개별 와인 저장 서비스,고급 와인 투자자문,와인 클래스 등을 제공한다.

와인 저장고 옆에는 글로벌 프라이빗 클럽 'KEE'와 합작으로 탄생한 다이닝 레스토랑 '알피스 바이 키(Alfie's by KEE)'가 운영된다. 영국에서 '부의 상징'으로 통한다는 불독 장식과 함께 영국 저택의 서재를 연상시키는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키 클럽은 당초 멤버십 회원만 입장이 가능하지만, 홍콩홈은 일대 금융맨들의 비즈니스 모임 장소나 가볍게 한잔 즐길 수 있는 '라운지 바'로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아시아 남성은 던힐의 '큰손'

던힐홈은 브랜드 탄생지인 런던을 제외하고는 모두 아시아 지역에 있다. 브랜드 전통과 현대적 기술을 적절히 접목시키고 있는 '알프레드 던힐'이 까다로운 아시아 남성들에게 유독 인기가 높기 때문이다. 티나 젠센 아시아퍼시픽 마케팅 디렉터는 "모든 브랜드들이 그렇겠지만 던힐에서도 폭발적인 성장률을 기록하는 곳이 아시아 지역"이라며 "전 세계 170여개 매장이 있는데 대부분 중국(90개) 일본(45개) 홍콩(12개) 대만(10개) 한국(6개) 등 아시아 지역에 집중돼 있어 던힐홈이 아시아에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아시아지역 3개 홈도 지역마다 차별화된 특징을 지닌다. 던힐은 일본 럭셔리 시장을 주름잡는 '레옹족'을 겨냥해 첫번째 홈은 2007년 일본 도쿄 긴자에 마련했다. 긴자홈은 창립자 알프레드 던힐의 취향이 물씬 풍기는 남성적인 모토리티스 라인과 헤어살롱,라운지로 꾸며졌다. 1920년대 네오클래식 스타일의 빌라를 복원해 2008년 세운 중국 상하이홈은 영국풍 정원과 함께 현대 아트 갤러리와 레스토랑, 그루밍숍 등을 갖추고 있다.

맨치니 지사장은 "홍콩 홈이 들어선 곳은 44년 전 홍콩에서 처음 비즈니스를 시작한 매장이라는 의미가 있다"며 "비즈니스의 중심지인 홍콩에서 '던힐홈'이 남성들의 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에는 언제 이 같은 공간을 선보일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한국 남성들이 원하면 언제든 열 수 있다"며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귀띔했다.

홍콩=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