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금융위기 발생 이후 홀로 고수익을 자랑해오던 골드만삭스가 최근 일격을 당했다. 전 세계 금융가의 돈줄을 마음대로 쥐락펴락해 부러움과 두려움의 대상이던 골드만삭스가 위기를 맞고 있다.

2007년 초 당시 28세의 프랑스계 골드만삭스 직원이었던 파브리스 투르가 이렇게 이메일을 띄웠다. "건물이 곧 왕창 무너질 테지만 후속파장을 따질 필요 없이 내가 만든 복잡 · 유해한 상품들이 잘못되더라도 나만은 건재할거야." 그러나 그는 SEC(증권거래위원회)의 소장에 사기꾼으로 지목되는 신세가 됐다.

SEC는 골드만삭스를 법원에 제소했다. 투르가 CDO(부채담보부증권)에 편입된 저당채권의 가치 하락을 예상하면서 유관 헤지펀드(폴슨)를 이용해 투자자들에게는 오를 것으로 믿도록 유도했고,그 폴슨이 문제의 CDO 설계에 직접 개입되었음을 공시하지 않았다는 게 제소 사유다. 이 거래에서 자국 은행들이 큰 손실을 입고 도산 위기에 몰린 독일과 영국에선 감독당국이 고소를 준비 중이다.

궁지에 몰린 골드만삭스는 정 · 관계의 깊은 인맥과 로비력을 동원해 맞대응하기위해 전력을 가다듬고 있다. 한편 리먼 브러더스의 변칙회계 처리를 감지하고도 제재를 게을리해 금융버블을 키웠고 매도프 및 스탠퍼드 같은 금융사기를 방치해 신뢰가 실추된 SEC 측에서도 이번을 기사회생의 기회로 벼르고 있다. 양측의 명운을 건 법정투쟁이 예정되어 있고,판결내용이 향후 금융가의 규범을 새로 쓸 것이다.

한국금융에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골드만삭스가 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치명적인 명예실추로 투자은행으로서의 시장지배력이 크게 손상될 것이다. 파생상품을 공식적인 거래소를 통해서만 거래하도록 하는 등 공시의무가 강화되는 쪽으로 환경이 바뀔 것이다. 국내 증권사들은 투자은행화를 추진하되 지각변동을 감안해야 한다. 금융 없이 경제는 경직된다. 그러나 금융이 경제 전체를 압도할 수는 없다. 실물흐름에 교란을 일으키는 금융기법이 정당화될 수 없다.

전 세계 금융감독 체계 개혁논의가 진행 중이다. 자본확충,유동성제고,건전성 규제강화는 필수요건이다. 그러나 금융개혁은 이해관계의 힘겨루기로 변질되면서 결국 타협의 산물로 이루어진다. 현재 미국 민주 · 공화당의 양단화 싸움이 그 모양이다.

한국의 경우 혼선에 혼선이 거듭되고 있다. 리스크 관리를 위해 강화해야 할 건전성 규제마저 일반 규제로 착각해 철폐 · 완화를 지상과제로 삼고 있다. 오히려 염불은 미루고 잿밥에 마음을 두고 정부와 국회의 관심이 모두 감독권한 귀속에 솔깃해 있다. 감독원은 그간 시장의 원성을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화재 사건이 발생하는데도 소방서 기구를 약화시키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 주요국 가운데 감독인원 축소,보수 삭감을 감행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금융상품의 복잡화,국제회피의 지능화,감독대상의 확대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인력 확충과 전문성 제고가 정답이다. 이번 금융위기의 교훈은 시장의 자동조정과 자율규제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일깨움이다. 시장이 잘 돌아가는 정상시에만 정부 개입이 최소화될 수 있다. 인간의 두 가지 원초적 의식,탐욕과 공포가 교차하며 호황과 불황으로 점철되는 금융시장에는 시장이 정상궤도를 이탈하는 대형사고가 주기적으로 발생한다. 그래서 금융감독의 기본이 튼튼해야 한다. 기관들 간의 땅 따먹기 게임으로 튼튼해질 수 없다.

뉴욕지방법원 바브라 존즈 판사는 과거 마피아 조직 보냐노가(家)에 철퇴를 내린 경력이 있다. 그녀가 월가의 종갓집 골드만삭스 사건을 맡아 어떤 판결을 내릴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김병주 <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