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8년 9월 구자범 세화피앤씨 사장은 직원들과 부둥켜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모니터 스크린에 부착하는 개인정보 보호필름을 개발한 지 4년 만에 미국 연방정부 조달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됐기 때문.미국 연방정부 조달시장은 외국기업에는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는 분야.특히 세화피엔씨는 줄곧 보호필름 분야 최강자인 미국 3M에 밀려 고배를 마셔야 했다. 세화피엔씨는 미국 연방정부 조달시장에서 진출 첫해 20만달러에 이어 작년 3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 회사 전체 매출의 7%에 달하는 규모다. 올해는 작년보다 33% 늘어난 40만달러어치를 수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절전 기능을 갖춘 멀티탭 제조업체 잉카솔루션은 2008년 미국 연방정부 조달시장 진출을 꾀했다. 2001년부터 멀티탭 개발에 주력해 최고의 기술력을 갖췄다고 자부했던 터라 당연히 '성공적 진입'을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미국 연방정부가 요구하는 반품규정 등 까다로운 절차를 만족시키지 못한 탓이다. 2년여 동안 절치부심한 잉카솔루션은 올해 다시 한번 도전장을 냈고,지난 3월 마침내 미국 연방정부 조달시장 진출에 성공했다. 올해 이 회사가 미국 정부기관 및 학교 등에 공급하는 멀티탭은 약 200만달러어치에 달한다.

국내 중소기업들이 미국 연방정부 조달시장에 잇따라 입성하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 조달시장은 전 세계 주요국 공공 조달부문 가운데 가장 큰 시장.연간 물품조달 규모만 2007년 4656억달러,2008년 5371억달러,지난해 6000억달러(추정)로 연평균 12%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올해 시장 규모는 6800억달러로 예상된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3635억달러)의 두 배에 가까운 규모다.

무엇보다 미국 연방정부 조달시장은 한번 진입하기만 하면 수출 보증수표로 통한다. 신뢰를 중시하는 미국 시장에서 연방정부에 조달했다는 것만으로 주정부와 시정부는 물론 민간시장에서도 러브콜이 이어지기 때문.실제로 미국 연방정부에 조달한 세화피앤씨는 이후 2년 동안 미국 주정부 3곳으로부터 200만달러의 추가 계약을 성사시켰다. 문제는 시장 진입 자체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데 있다.

미 연방정부의 물품 조달 방식은 크게 직접조달과 간접조달로 나뉜다. 직접조달은 미국 연방조달청(GSA)에서 정부기관이 원하는 물품을 직접 구매하는 것이고,간접조달은 연방정부 구매계약을 따낸 주계약자(Prime contractor)를 통해 하청관계를 맺은 기업에 납품권을 주는 방식이다. 직접조달은 주로 군사용 물품에 해당하고 대다수 물품은 간접조달 형태로 이뤄진다. 박기식 KOTRA 전략사업본부장은 "미국 연방정부 조달시장은 환경 · 노동 등 요구조건이 까다롭고 외국기업에 폐쇄적이어서 뚫기가 어렵다"며 "KOTRA를 통해 미국 연방정부 조달시장에 문을 두드린 기업은 400여개에 이르지만,이 중 성공한 기업은 10%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잉카솔루션과 세화피앤씨가 미국 조달시장 공략에 성공한 비결은 뭘까. 답은 '장애인고용촉진제도(Ability One Program)'에 있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 연방정부가 장애인단체나 소수민족 등 사회적 약자가 속한 단체를 정부조달에서 우대하는 것.두 업체 모두 미국맹인산업협회(NIB) 산하 납품업체인 위스크래프트를 뚫는 우회전략을 이용했다. 이 단체들을 통해 납품하는 경우 20년간 우선협상자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태명/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