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닷컴] 지난달 입적한 법정 스님이 1960년대에 쓴 창작시 10여편이 발굴됐다.

도서출판 은행나무는 16일 “5년 전부터 법정 스님의 전기소설을 집필해온 작가 백금남씨가 취재 및 자료 수집 과정에서 법정 스님이 30대 때 쓴 창작시 10편가량을 발굴해 이 중 4편을 오늘 출간한 장편소설 《법정,맑고 향기로운 사람》에 수록했다”고 밝혔다.

출판사에 따르면 이들 시는 대한불교조계종 기관지 ‘불교신문’의 전신 ‘대한불교’에 1963년부터 1969년 사이에 실린 것으로,법정 스님의 기존 저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시인의 면모를 보여준다.소설에 소개된 작품은 ‘다래헌 일기’‘먼 강물 소리’‘병상에서’‘어떤 나무의 분노’ 등이다.

‘보라! / 내 이 상처투성이의 얼굴을. // 그저 늙기도 서럽다는데 / 내 얼굴엔 어찌하여 빈틈없이 / 칼자국뿐인가.…(중략) // 하잘 것 없는 이름 석 자 / 아무개! / 사람들은 그걸 내세우기에/이다지도 극성이지만 / 저 건너/ 팔만도 넘는 그 경판 어느 모서리엔들 / 그런 자취가 새겨 있는가. / 지나간 당신들의 조상은 / 그처럼 겸손했거늘 / 그처럼 어질었거늘….'('어떤 나무의 분노’중)

법정 스님은 이 시의 오른쪽 상단에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다.‘물 맑고 수풀 우거진 합천 해인사.거기 신라의 선비 최고운 님이 노닐었다는 학사대에는,유람하는 나그네들의 이름자로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수백 년 묵은 전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또 1969년 11월9일자 ‘대한불교’에 실린 ‘다래헌 일지’는 법정 스님이 동국역경원 역경사업에 참여할 때 봉은사 다래헌에서 쓴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연일 아침안개 / 하오의 숲에서는 마른 바람 소리 // 눈부신 하늘을 / 동화책으로 가리다 / 덩굴에서 꽃씨가 튀긴다 // 비틀거리는 해바라기 / 물든 잎에 취했는가/ 쥐가 쓸다만 맥고모처럼 / 고개를 들지 못한다 // 법당 쪽에서 은은한 요령 소리 / 맑은 날에 / 낙엽이 또 한 잎 지고 있다 // 나무들은 내려다보리라 / 허공에 팔던시선으로 / 엷어진 제 그림자를 // 창호에 번지는 찬 그늘 / 백자 과반에서 가을이 익는다 // 화선지를 펼쳐 / 전각에 인주를 묻히다 / 이슬이 내린 청결한 뜰 / 마른 바람 소리 / 아침 안개”(이상 전문)

1965년 1월17일자에 실린 ‘먼 강물 소리’에서는 “창호에 / 산그늘이 번지면 / 수린수린 스며드는 / 먼 강물소리 // -이런 걸 가리켜 세상에서는 / 외롭다고 하는가?/ 외로움쯤은 하마 / 벗어버릴 때도 되었는데 / 이제껏 치룬 것만 해도 / 그 얼마라고-(하략)”라고 노래했다.

또 1965년 4월4일자에 실린 ‘병상에서’에서는 “앓을 때에야 새삼스레 / 혼자임을 느끼는가 / 성할 때도 늘 혼자인 것을 //(중략)// 어둠은 싫다 / 초침 소리에 짓눌리는 어둠은 // 불이라도 환히 켜둘 것을 // 누구를 부를까 / 가까이는 부를 만한 이웃이 없고 / 멀리 있는 벗은 올 수가 없는데”(이상 부분)라며 한 인간으로서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소설에 수록된 것 외의 시로서는 ‘입석자’‘초가을’‘내 그림자는’‘정물’‘미소’ 등이 있다.이 중 ‘미소’는 법정 스님이 어느 불교 신문의 ‘독자시단’에 투고한 것으로,당일 신문에는 법정 스님을 비롯한 여러 명의 시가 함께 실려 있다.작가는 “법정 스님이 젊은 시절에는 시를 쓰다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잠언적 성격이 짙은 수필 쪽으로 돌아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장편소설 《법정》에서 백씨는 법정 스님의 출생부터 출가,수행,입적에 이르는 전 생애를 복원했으며 무소유의 길을 걷게 된 과정,현실참여와 수도자의 삶 사이의 갈등,길상사 창건 뒷이야기,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 창립과정 등도 입체적으로 그렸다고 출판사는 설명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