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는 자신의 그늘 안에 떨어진 자식(씨앗)들을 잘 키우지 못한다. 햇볕과 물을 자기가 독점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전나무는 씨앗들에게 인내심을 가르친다. 전나무 씨앗은 10~20년 동안 어린 나무 상태를 유지하다 모(母)나무가 쓰러져 공간이 생기거나 환경이 바뀌면 그때서야 비로소 자라기 시작한다.

나무와 꽃은 이처럼 성격과 살아가는 이야기가 제각각이다. 수목원을 찾는 것은 등산을 하거나 아침운동을 위해 공원에 가는 것과는 다르다. 사람들이 자연과 보다 쉽게 대화할 수 있도록 숲을 연구하고 가꾸는 전문가들이 다리를 놓아주기 때문이다. 서울 · 수도권의 대표적인 수목원 두 곳을 찾아 숲의 봄 향기에 취해봤다.

◆540여년 역사의 광릉 국립수목원

산림청 산하 광릉 국립수목원은 국내 수목원 중에서도 고목(古木)과 거목(巨木)이 많기로 유명하다. 산책하다 보면 곳곳에서 아름드리 나무를 만난다. 광릉 숲이 1468년 6월 조선 세조의 능림(陵林)으로 정해지면서 국가의 보호를 받아온 덕분이다.

경기도 포천 · 남양주 · 의정부에 걸쳐 있는 광릉 숲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때에도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아 숲이 잘 보존돼 있다. 소나무 · 잣나무 · 전나무 등 침엽수와 참나무류 · 서어나무류 · 단풍나무류 등 활엽수가 섞여 자라는 혼효림이다.

여기서 먼저 추천할 곳은 육림호(育林湖)다. 수목원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왼쪽으로 꺾어 걷다 보면 나무들에 빙 둘러싸인 인공호수가 나타난다. 봄에는 호수면에 비친 개나리와 진달래,목련 등 봄꽃의 정경이 아름답고 여름에는 녹음이 짙다는데 도심보다 기온이 3~4도가량 낮아 이제 꽃들이 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가을 · 겨울엔 단풍과 설경이 탁월해 마치 '천연 카펫'을 깔아놓은 것 같다고 한다. 사계절 경치가 모두 으뜸이다. 바로 옆 통나무집 카페에선 차를 한 잔 마실 수 있고 습지식물전시원도 구경할 만하다.

여기서 고산식물보존원으로 가는 길에는 제한구역 표시가 돼 있지만 오는 21일부터는 입장할 수 있다. 또 하늘 높이 쭉쭉 뻗은 전나무숲 길이 동물원으로 이어지고,전나무 숲에는 'O₂(산소) 체험장'이 마련돼 있다. 가이드와 함께 명상과 체조를 하며 숲의 기운을 느끼는 프로그램이다.

광릉수목원은 이 밖에도 대충 걸어 2시간,꼼꼼하게 살펴보려면 넉넉히 4시간을 잡아야 할 만큼 볼거리가 많다. 숲생태 관찰로에선 지난달 내린 습한 눈 때문에 쓰러진 나무와 그 공간을 차지하려는 새로운 나무들의 움직임,땅 위로 고개를 내밀며 순서를 기다리는 자생초들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실개천 주위와 능선에서 각기 다른 식물군이 자라는 것도 살펴보자.

'향로식물원''양치식물전시원''관상식물전시원''관목원''약용식물보존원' 등 지역과 용도에 따라 소주제 16개로 엮인 공간들이 흥미롭다. 장애인을 위해 조성된 '손으로 보는 식물원'은 향기와 질감으로 식물을 구별하는 공간.산림박물관에서는 숲의 역사,산림과 인간의 관계를 알기 쉽게 설명해 놓았다.

광릉수목원에는 3344종의 자생식물과 외국식물 1만2000여종이 살고 있다. 고라니 · 멧돼지 · 토끼 등의 동물도 살고,천연기념물도 15종이나 산다. 또한 이곳의 식물들은 모두 어디서 태어나 옮겨졌고 어떤 연구를 거쳤는지 자신만의 족보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신통하다.

신창호 국립수목원 연구기획팀장은 "사립 수목원은 화려한 외관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국립수목원은 미개발 품종과 야생 · 자생 식물,외래종 · 수입 식물 등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말했다. 국립수목원에는 숲 해설가 20명이 활동하고 있어 요청만 하면 언제든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오붓하게 가족이나 연인끼리 산책하고 싶다면 자동 해설 서비스 장비를 대여하면 된다.

숲의 훼손을 막기 위해 평일(화~금)에는 5000명,토요일에는 3000명의 사전 예약자만 들어갈 수 있다. 수목원 홈페이지(www.kna.go.kr)에서 30일 후까지 예약할 수 있다. 간단한 도시락과 간식을 갖고 갈 수 있는 것도 알아두자.입장권은 어른 1000원,청소년 700원,어린이 500원.(031)540-2000

◆살아 있는 식물도감 숲 홍릉수목원

서울 청량리동에 있는 국립산림과학원 부속 홍릉수목원은 국내 전역에 흩어져 있는 수천 종의 풀 · 꽃 · 나무를 한데 모아 놓아 웬만한 식물은 직접 볼 수 있는 곳."국내외 여러 식물 유전자원을 체계적으로 수집 관리하기 위해 조성한 시험연구림이라 숲 자체가 한 권의 식물도감"(《꼭 가봐야 할 우리나라 수목원&식물원 23》,이동혁 지음)이다.

몸매가 아름다운 삼나무와 편백,은행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큰 길을 따라 걷거나 무궁화원,침엽수원,활엽수원,초본식물원 등을 차례로 방문하면 좋다.

산림과학원 인근 상수리나무 앞을 지나 왕벚나무 아래 나무데크 쉼터에 앉아 흩날리는 왕벚나무의 꽃잎에 취해본다. 눈앞에는 홍매화와 함께 또다른 벚꽃 종류인 올벚나무가 봄의 향연을 준비하고 있다. 왕벚나무와 달리 올벚나무는 꽃받침통이 단지 모양이다.

잔디광장 옆으로는 예전에 통나무집이 있던 곳에 느티나무 쉼터가 기다린다. 잔디가 쫙 펼쳐진 홍림원에는 수목원의 명물 반송이 있다. 땅에서부터 여러 갈래의 줄기로 갈라져 마치 부채를 펼친 듯한 모양새가 일품이다. 홍릉수목원의 가장자리 뒤쪽 숲길도 반드시 들러볼 것.벚꽃이 길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홍릉수목원은 주말에만 개방하며 무료다. (02)961-2551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