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발레리나 강수진씨의 내한 공연이 있었다. 그동안 자신이 고국 무대에 선보이고 싶었던 작품들을 모아 동료 무용수들과 함께 마련한 무대였다.

"요즘 우리나라에는 슬픈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그렇다고 언제까지 슬픔에 잠겨 있을 수만은 없잖아요? 이번 공연이 실의에 빠진 우리 국민들에게 잠시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 기자회견장에서 강수진은 이렇게 귀국 소감을 밝혔다.

강수진의 공연은 그녀의 말대로 국가와 사회를 위해 자신의 직무를 다했던 사람들을 잃은 슬픔을 잠시나마 잊게 해 줄 만큼 온 정성을 다해 꾸민 무대였다. 무용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브노아 드 라 당스 최우수 여성무용수상을 수상한 월드스타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피겨 선수 김연아도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녀와 함께 캐나다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젊은이들도 주목의 대상이었다. 얼마 후에는 또 월드컵 열풍이 거세게 몰아칠 것이다.

온 국민을 열광시키는 스포츠의 위력을 보면서 예술이 사회와 국가를 위해 공헌할 수 있는 경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지난해 가을 타계,전 세계 무용인들을 슬픔에 빠트렸던 독일의 무용가 피나 바우쉬는 세계의 도시를 소재로 만든 수십 편의 작품을 통해 서로 다른 정서의 국가 이미지를,테러와 전쟁을 경계하는,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춤으로 담아냈다. 백남준은 또 어떠한가?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예술을 창안,한 시대를 풍미하며 전 세계 미술계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지 않았던가?

국민들이 예술을 통해 문화적인 감수성을 키우는 것은 곧 창의력 신장으로 이어지고,이는 결국 국력이 된다는 것을 아는 여러 선진국에서는 이미 문화와 예술을 국가의 중요한 정책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얼마 전 '무용의 힘'을 주제로 한 어느 세미나에서 들었던 사례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미국의 한 공립 초등학교가 국제교류를 다문화 이해 교육과 연계시키기 위해 실시한 학교 방문(School Visit)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세계사 시간 중 한국 관련 수업이 '비디오를 통한 한국의 문화예술 이해-3개의 각기 다른 한국의 전통춤을 직접 보여주는 실연-학생들이 직접 한국무용 동작을 체험해 보는 순서-그리고 질의 응답'순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직접 그 현장을 목격한 발표자는 학생들이 봉산탈춤을 직접 추고 강강술래를 배우는 것을 무척 재미있어 했으며,"얼쑤"하는 추임새를 통해 관객과 하나되는 것을 체험했고 "강~강~ 술래"라는 후렴을 따라 하며 한국음악의 독특한 리듬과 공동체 춤의 정신을 이해했다고 말했다.

한국이란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조차도 몰랐던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런 형태의 국제이해프로그램을 통해 어릴 때부터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같은 교류 국제프로그램은 거꾸로 보면 한국을 알릴 수 있는 효율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달리 말해 예술이 사회와 국가를 위해 공헌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미국 뉴욕에 있는 예술 커뮤니티센터는 예술을 포함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계층의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신체적,정서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이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미적 체험과 함께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문화예술과 접하게 되는 것이고,이를 통해 그만큼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예로부터 춤추고 노래하기를 즐기지 않았던가? 그만큼 흥이 넘치고 끼가 많은 국민성을 갖고 있다. 발레리나 강수진이 말했듯이 생활 속에서 살아 숨쉬는 예술을 통해 이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고 신명나는 사회를 만들어 가기를 소망해 본다.

박인자 <한국발레협회장·숙명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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