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과 외국인 사이에 주로 이뤄지는 이른바 '퍼실 매매'가 불공정 논란에 휩싸였다. 외국인이 기관 물량을 시세보다 싸게 사가는 사이 개인이 뒤늦게 추격 매수에 나설 경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체결가격이 공개되지 않는 데다 장중에 시장의 힘으로 형성된 가격을 인위적으로 왜곡시킨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1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자산운용사 등 기관이 정규장 이외 시간에 외국인에게 대량으로 주식을 넘기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퍼실 매매는 '퍼실리테이션 트레이딩(facilitation trading)'의 줄임말로,'간편매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대개 장 마감 후 기관이 보유한 물량을 종가보다 싼 가격으로 외국인에게 파는 식이다. 가격은 당일 가격제한폭 범위 내에서 정해진다. 외국인은 시세보다 낮게 물량을 받아간 뒤 순차적으로 차익을 남기고 처분한다.

지난 13일 코리안리(20만주) 현대모비스(15만주) 웅진코웨이(10만주) 등이 퍼실 매매로 기관에서 외국인에게 넘어갔다. 12일에도 현대차 60만주가 이런 식으로 거래됐다. 이날 현대차 전체 거래량의 21%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A운용사 관계자는 "장중에 대량 매물을 내놓으면 시장에 충격이 크기 때문에 퍼실 매매를 주로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외국인이 해당 종목을 사들이고 있다고 판단한 개인이 추격 매수에 나섰다가는 고점에 물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B증권사 관계자는 "퍼실 매매로 가져간 주식은 결국 외국인이 내놓을 물량이므로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체결가격이 공시되지 않아 다른 투자자들이 알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정규장에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긍정적인 측면을 감안해야 한다"며 "해외에선 (퍼실 매매가) 더 활성화돼 있다"고 설명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