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통계-경제근간 '흔들'] (中) 현실과 괴리된 실업률…실업률 4.9%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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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주부·취업준비생 빠진 '통계 착시'
지난 2월 대학을 졸업한 김모씨(25)는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실업률이 낮은 편'이라는 정부의 발표를 접할 때마다 울화통이 터진다. 그는 작년부터 100여개 기업에 입사지원서를 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고 지금은 석사과정 진학을 고려하고 있다. 김씨는 "석사과정에 진학하는 대학생 중 상당수가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택한 것"이라며 "그런데 정부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취업 의지가 없다고 간주한다"고 푸념했다.
국내 경제학자들은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부실한 통계의 대표 사례로 실업률을 꼽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 2월 우리나라의 공식 실업률은 4.9%였고 작년 10월에는 3.2%에 그쳤다. 학자들은 "실업률 3%대는 자발적인 구직 · 이직자들을 감안하면 완전고용이 이뤄졌다는 뜻"이라며 "우리나라의 실업 통계는 현실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실업률 · 임금 · 근로시간 왜곡
우리나라는 국제노동기구(ILO)의 기준을 기초로 '최근 1주일 이내에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구했지만 1시간 이상 일하지 못한 사람'을 실업자로 분류한다. 반면 미국 등이 채택하고 있는 OECD 기준은 최근 4주 내에 구직활동을 했지만 1시간 이상 일하지 못한 사람들을 모두 실업자로 분류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실업률이 미국 등보다 낮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더 큰 문제는 구직이 힘들어 진학을 하거나 결혼 · 육아 · 출산 때문에 경력이 단절된 주부들,퇴직 후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이 '비경제활동인구'에 포함돼 실업률 계산 자체에서 빠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우리나라는 실업보험제도나 직업 알선 기관이 발달하지 않아 구직자들이 적극적으로 정부에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이들을 구직 의사가 없다고 간주하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그는 "고용률 지표(2월 59.5%)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5~10%포인트가량 낮은 것만 봐도 체감 실업률이 통계청이 발표하는 수치와는 다른 것을 쉽게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국제비교에서 우리나라 통계는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OECD에서 회원국의 실업률이나 근로시간 등에 관한 자료를 발표하는 홍은표 OECD 노동력 및 통계실장은 "한국의 실업률을 적을 때마다 실제 현실과 다르다는 생각에 마음이 찜찜하다"고 털어놨다.
◆경제활동인구에도 '사각지대'
경제활동인구 중 일부가 통계에서 제외돼 사각지대로 남는 것도 문제다. 노동부가 사업체 노동실태 현황을 조사하는 경우 공공기관을 조사 대상에서 아예 제외하고 있다. 사업체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관련 통계가 왜곡될 수밖에 없다. 통계청의 '전국 사업체 조사'에서는 건설일용직 방문판매 등 옥외(屋外)근로자들이 빠진다. 노동연구원 관계자는 "전체 임금 근로자는 1600만명가량으로 추정되지만 실제 조사 대상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빠지는 사람이 많아 모집단으로 삼는 임금근로자는 1100만명 수준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평균 임금이나 고용 현황,생산성 등에 관한 통계는 상당히 왜곡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실업률 임금 근로시간 등에 대한 통계가 부실하면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다. 정부가 효과적인 정책을 제때 수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자는 "매년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마다 통계를 두고 위원들끼리 싸운다"고 귀띔했다. 같은 임금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노동부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결과와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결과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실업률 보조지표 개발 시급
전문가들은 통계와 현실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고용 보조지표를 개발해 활용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고용지표를 U1부터 U6까지 6단계로 나눠 발표하는 미국의 사례를 참고하자는 것이다. 이 중 U3는 일반적인 의미의 실업률을 뜻하고 숫자가 높아질수록 실업자의 의미를 넓게 해석해 U6는 구직 단념자와 주 19시간 이하의 단시간 근로자까지 실업자로 간주한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실업자를 세분해 통계를 내면 정부 발표와 체감 실업률의 차이를 줄일 수 있고 실업대책도 보다 정교하게 수립해 시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통계청과 노동부,연구기관 등 고용 · 노동 관련 통계를 생산하는 기관들의 협조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유사하거나 중복되는 통계를 통합하면 조사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면서 기존 통계의 문제점도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적인 실업률 외에 일자리의 질을 노동 통계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선진국의 경우 자발적 파트타임 근무와 비자발적 파트타임 근무를 나누는 등 일자리의 질적인 수준이 통계에 반영되고 있다"며 "우리나라 노동 통계도 질적인 부분을 보완해야 활용 가치가 높아진다"고 밝혔다.
이상은/유승호 기자 selee@hankyung.com
국내 경제학자들은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부실한 통계의 대표 사례로 실업률을 꼽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 2월 우리나라의 공식 실업률은 4.9%였고 작년 10월에는 3.2%에 그쳤다. 학자들은 "실업률 3%대는 자발적인 구직 · 이직자들을 감안하면 완전고용이 이뤄졌다는 뜻"이라며 "우리나라의 실업 통계는 현실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실업률 · 임금 · 근로시간 왜곡
우리나라는 국제노동기구(ILO)의 기준을 기초로 '최근 1주일 이내에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구했지만 1시간 이상 일하지 못한 사람'을 실업자로 분류한다. 반면 미국 등이 채택하고 있는 OECD 기준은 최근 4주 내에 구직활동을 했지만 1시간 이상 일하지 못한 사람들을 모두 실업자로 분류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실업률이 미국 등보다 낮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더 큰 문제는 구직이 힘들어 진학을 하거나 결혼 · 육아 · 출산 때문에 경력이 단절된 주부들,퇴직 후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이 '비경제활동인구'에 포함돼 실업률 계산 자체에서 빠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우리나라는 실업보험제도나 직업 알선 기관이 발달하지 않아 구직자들이 적극적으로 정부에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이들을 구직 의사가 없다고 간주하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그는 "고용률 지표(2월 59.5%)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5~10%포인트가량 낮은 것만 봐도 체감 실업률이 통계청이 발표하는 수치와는 다른 것을 쉽게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국제비교에서 우리나라 통계는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OECD에서 회원국의 실업률이나 근로시간 등에 관한 자료를 발표하는 홍은표 OECD 노동력 및 통계실장은 "한국의 실업률을 적을 때마다 실제 현실과 다르다는 생각에 마음이 찜찜하다"고 털어놨다.
◆경제활동인구에도 '사각지대'
경제활동인구 중 일부가 통계에서 제외돼 사각지대로 남는 것도 문제다. 노동부가 사업체 노동실태 현황을 조사하는 경우 공공기관을 조사 대상에서 아예 제외하고 있다. 사업체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관련 통계가 왜곡될 수밖에 없다. 통계청의 '전국 사업체 조사'에서는 건설일용직 방문판매 등 옥외(屋外)근로자들이 빠진다. 노동연구원 관계자는 "전체 임금 근로자는 1600만명가량으로 추정되지만 실제 조사 대상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빠지는 사람이 많아 모집단으로 삼는 임금근로자는 1100만명 수준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평균 임금이나 고용 현황,생산성 등에 관한 통계는 상당히 왜곡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실업률 임금 근로시간 등에 대한 통계가 부실하면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다. 정부가 효과적인 정책을 제때 수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자는 "매년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마다 통계를 두고 위원들끼리 싸운다"고 귀띔했다. 같은 임금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노동부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결과와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결과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실업률 보조지표 개발 시급
전문가들은 통계와 현실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고용 보조지표를 개발해 활용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고용지표를 U1부터 U6까지 6단계로 나눠 발표하는 미국의 사례를 참고하자는 것이다. 이 중 U3는 일반적인 의미의 실업률을 뜻하고 숫자가 높아질수록 실업자의 의미를 넓게 해석해 U6는 구직 단념자와 주 19시간 이하의 단시간 근로자까지 실업자로 간주한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실업자를 세분해 통계를 내면 정부 발표와 체감 실업률의 차이를 줄일 수 있고 실업대책도 보다 정교하게 수립해 시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통계청과 노동부,연구기관 등 고용 · 노동 관련 통계를 생산하는 기관들의 협조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유사하거나 중복되는 통계를 통합하면 조사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면서 기존 통계의 문제점도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적인 실업률 외에 일자리의 질을 노동 통계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선진국의 경우 자발적 파트타임 근무와 비자발적 파트타임 근무를 나누는 등 일자리의 질적인 수준이 통계에 반영되고 있다"며 "우리나라 노동 통계도 질적인 부분을 보완해야 활용 가치가 높아진다"고 밝혔다.
이상은/유승호 기자 selee@hankyung.com